지난달 말 외교통상부, 산업자원부, 서울시 등은 대다수 유럽연합(EU) 회원국을 포함해 40여 개국 주한 대사들로부터 '항의'의 성격을 띤 서한을 받았다.
철저하게 자국의 이익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매사 행동과 말을 아끼는 외교사절들이 이렇듯 이례적인 행동을 취하기까지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부모라면 누구도 비켜갈 수 없는 자녀 교육에 대한 걱정이 그것이다. 정부 당국에 따르면 이 서한은 오는 8월 말 개교를 앞둔 서울 용산국제학교의 운영 주체는 '국제적'이고 '종교적으로 편향되지 않을 것'이라는 두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주한 대사들이 국제학교를 세우는 데 종교 문제를 왜 거론하게 됐을까. 바로 용산국제학교 설립을 위해 구성된 코리아외국인학교재단 측이 운영주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우선협상대상자를 교육에 종교적 색채를 배제하고 있는 서울 영국국제학교(British International School Seoul)에서 종교 과목을 필수로 하는 '국제크리스천학교 (International Christian School)'로 바꿨기 때문이다. 학교 내에서 종교적 성격의 의식을 일절 금하는 유럽국가의 대사들은 ICS에서 '예배 시간'이나 '성경 공부'가 필수인 데 대해 불만을 갖고 있는 상태며 이 같은 불만은 비단 유럽지역에서 온 외교사절들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서울에 주재하고 있는 한 대사는 4일 "가톨릭 신자인 나도 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어떻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사실 서울 소재 외국인학교를 다니면서 종교 교육을 비켜가기는 쉽지 않다.
현재 서울시내에서 운영되고 있는 10여개 외국인 학교 중 유·초·중·고 과정을 가르칠 수 있는 인력을 보유한 학교는 7개에 불과하다. 그 중 수업을 영어로 진행하는 학교는 6곳. 연희동 서울외국인학교에 '병설'돼 캠퍼스를 공유하는 BISS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미국계인데다 4곳은 기독교 재단이 운영하고 있다. 그나마 종교 교육을 하지 않는 학교는 모두 규모가 작아 총 수용 가능 학생수가 400명이 약간 넘는 정도다.
서울시내에 터를 잡고 있는 공관만 110개가 넘고 대사를 비롯한 공관 직원과 그들의 가족 등 주한 외교 사절의 규모를 감안하면 부족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도 8개에 달하는 점을 생각하면 주한 외국인 자녀들을 위한 교육 인프라는 무척 취약한 셈이다. 아이들의 교육 문제는 본국과 해외를 주기적으로 넘나드는 외교관들에게 무엇보다 큰 골칫거리며 나아가 경제영역의 외교관 역할을 자임하는 외국인 투자자 유치에도 걸림돌이 된다는 점은 2003년 산자부가 국내 거주 외국인을 상대로 연 교육환경회의에서도 지적된 바 있다.
그 대책으로 거론됐던 학교가 바로 오는 9월 본격적으로 수업을 시작할 용산국제학교였다. 그러나 개교를 한 달 남짓 앞두고 우선협상대상자가 BISS에서 ICS로 바뀐 데 이어 결국 4일 ICS가 운영주체로 선정됨에 따라 이들 유럽 등 비(非)미국계 외국인들의 오랜 염원은 눈앞에서 공중분해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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