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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 이런 삶] 이두호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과 교수

중학교때 우연한 기회로 만화를 그렸던 게 인생이 돼 버렸다. 그렇게 살아온게 벌써 50년째이고, 이제는 손꼽히는 만화가일 뿐아니라 교수로 강단에 서기도 한다.

그러나 꿈은 화가였다. 대학에 진학해서도 서양화를 전공, 꿈을 키워갔으나 가난때문에 자퇴할 수밖에 없었고 다시 만화를 그려야 했다.

당시만 해도 본업은 화가라고 여겼기에 자신의 만화가 인기있다는 소리를 들어도 그리 반갑지 않았고 오히려 번민만 깊어졌다고 한다. 때문에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자 곧바로 화가로서의 길을 모색했다.

그러나 몇년 버티지 못하고 다시 만화가 자리로 되돌아왔으며, 그때부터 타고난 팔자라고 생각했고 본격적으로 만화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만화의 소재로 택한 것은 '임꺽정' 등 질곡많은 우리 역사였다. 자신이 살아온 날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두호(李斗號·63)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의 '만화같은 인생'이다.

1943년 고령에서 태어나 다산초등학교에 입학했으나 6.25 전쟁으로 가족들을 따라 대구로 피난 와 남산초등·복명초등학교를 거쳐 오성중·영남고를 졸업했다.

남산초등학교 4학년때, 교내 사생대회에서 1등을 했고 이를 계기로 그의 인생에서 빼놓을 수없는 은사인 미술선생을 만나게 됐다. 오성중학교 때는 야간부에 다니면서 낮에는 미술선생이 차린 화실로 가 그림공부를 했다. 몇몇 사생대회에 나가 상을 받다가 2학년때 서울에서 출판사를 하고 있는 사람의 눈에 띄어 만화책을 내게 됐다. 3학년때는 매일신문 신춘만화 공모에 뽑히기도 했다.

고교도 야간부에 진학, 미술 공부를 계속한 뒤 더 넓은 곳에서 화가로서의 꿈을 펴보겠다는 생각에 64년, 서울에 있는 홍익대 서양화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1학년때는 집에서 등록금을 보내줘 어떻게든 버틸 수있었으나 2학년을 앞두고 학비를 도저히 마련할 길이 없어 입대해 버렸다. 68년 제대후에도 당장 복학하기가 어려워 구두닦이와 행상 등으로 학비를 어렵게 마련했으나 복학 시한이 지났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받아주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만화를 그리기 시작, 69년부터 어린이 잡지나 스포츠 신문 등에 '폭풍의 그라운드' '머털도사님' '객주' '임꺽정' 등의 인기 만화를 잇따라 연재하면서 유명 만화가로 꼽히기 시작했으며, 한국만화문화상 등 각종 상도 받았다.

96년부터는 세종대에 개설된 만화 애니메이션학과의 교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만화박물관 격인 부천만화정보센터 이사장도 맡고 있다. 부인 정소자씨는 오성중학교 동기동창이며 슬하에 2남1녀를 두고 있다.

서봉대기자 jinyo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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