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이 달라졌어요."
남대구초교 교사들의 얼굴에선 지난 1학기 동안의 경험담을 떠올리는 내내 흥분과 즐거움이 역력했다. 때론 황당하기까지 했던 일들을 쉴 틈 없이 쏟아내는 모습은 교직경력 20년의 베테랑 교사보다 자신들의 여덟 살 짜리 어린 제자들을 더 닮아 있었다.
수업이 끝나면 교사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저절로 모였다. 지난 시간 교실에서 있었던 일들을 동료에게 전해 주고 싶어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때로 터져나오는 웃음보를 참으면서.
"'몸 알아보기' 실습 때 유독 장난끼 많은 남자애가 있었어요. 그런데 얘가 수업중에 화장실이 급하다며 갔는데 바지를 온통 오줌으로 적시고 눈물이 그렁그렁 한 채 돌아왔어요. 이유를 물었더니 '고추 끝에 접착 테이프를 바르면 어떻게 될까 궁금했다'는 거예요. 오줌보는 당장 터질 지경인데, 칭칭 감은 테이프가 잘 풀어질리 있었겠어요?"
김미영 1학년 교사는 학기 초에 있은 어이없는 해프닝을 떠올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황당 사건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퐁퐁(세척제)이 물에 녹으면 거품이 생긴다는 걸 안 아이들은 화장실 세면대에 퐁퐁을 모두 털어넣어 바닥까지 거품이 넘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김 교사는 야단치지 않았다고 했다. 대신 "왜 그랬느냐?"고 물었고, 아이들의 호기심을 이해할 수 있었다.
"3월에 눈이 온 날이 있었어요. 눈이 쌓이는 모습이 어떨까고 물었더니 아이들이 종이로 작은 마을을 만들어 보자고 하더군요. 스프레이를 뿌리니까 눈 쌓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아이들의 아이디어로 수업이 진행될 때도 많았습니다."
은귀향 1학년 교사는 달라진 자신의 모습에 더 놀란다고 했다. 처음 이 프로젝트에 대한 설명을 들었을 때만 해도 엄두가 나지 않았다. 호된 야단과 지시로도 통제하기 어려운 아이들을 대상으로 자유분방한 수업을 진행하기는 절대 무리라고 생각했다.
"돌이켜 보면 예전에는 가르쳐야 할 것도 많고 진도 맞추기도 바빠 아이들을 제 쪽으로 끌어당기는 수업을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제는 제가 먼저 '뭐가 궁금하니?' '무엇을 말하고 싶니?' 하고 의견을 구합니다."
은 교사는 지난 20년간의 교직생활 중 올해가 가장 보람있었다며 "다른 학교에 가더라도 이런 수업방식을 적용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배정희 2학년 교사는 이번 '학교 실험'의 어려움이 국가교육과정(공교육)이라는 틀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아이들의 창의와 흥미를 해치지 않는데 있었다고 털어놨다.
배 교사는 "학생들의 흥미만 좇다보면 교육과정을 놓치기 십상이었다"며 "아이들의 흥미를 유익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가 상상하는 제자들의 6년 후는 어떤 모습일까?
"아마 리더가 돼 있겠죠. 내 앞에 닥친 문제가 무엇인지, 해결방법은 무엇인지, 일은 어떻게 나누고 협동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이끌어 가는 그런 유형의 학생, 나아가 그런 지도력을 갖춘 어른으로 성장할 거라고 믿습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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