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방학이 되면 가정의 분위기도 여유가 넘쳤으나, 요즘은 더 빡빡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자녀가 세우는 방학 계획보다 부모가 염두에 둔 계획이 훨씬 많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특히 다음 학기 또는 다음 학년에 배울 내용을 미리 배워둬야 한다는 생각은 학부모들에게 강박관념이 되고 있다. '남보다 먼저' '남보다 많이'가 학부모의 미덕으로 여겨지는 시기에 이를 소홀히 할 간 큰(?) 학부모는 그리 많지 않다. 용기를 내서 이른바 선행학습을 시키지 않고 체험학습이나 여행 등을 하게 해도 마음은 편치 않다. 이번 여름방학엔 과연 어떻게 해야 할지 전문가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여 보자.
▶ 통합논술
2008학년도 대입안이 발표된 이후, 특히 주요 대학들이 대학별 고사의 비중을 높이겠다고 밝히면서 논술은 열풍을 넘어 광풍에 이르고 있다. 고교생은 물론 중학생 대상 논술학원, 교습소가 곳곳에서 생기고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독서 지도까지 논술과 연계되고 있다.
하지만 각 대학에서 발표한 통합논술 예시문제를 분석해보면 이제 특정 과목 교사나 학원 강사가 논술을 가르치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과거처럼 문학 작품이나 인문 사회학 관련 저서에서 지문을 제시하고 단일한 주제의 논술문을 요구하던 때와는 접근 방법이 판이하게 다르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300~500자 정도의 분량을 요구하는 문제에서는 기승전결의 형식을 갖춘 글쓰기는 별 의미가 없다. 아는 지식을 바로 적어 내려가면 된다. 통합논술은 서술형 주관식 문제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런 유형에 대처할 수 있는 최선의 대비책은 학생이 각 개별 과목을 먼저 철저하게 공부하는 것이다. 윤리 시간에는 윤리를 열심히 하고, 경제 시간에는 경제를 열심히 하는 것이 최선의 논술 대비책이라는 것이다. 통합은 교사가 해 주는 것이 아니라 각 과목의 기본 개념과 지식을 활용하여 학생 스스로 해야 한다. 초·중학생 역시 마찬가지 논리를 적용할 수 있다.
논술은 특히 진도를 빨리 나가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학생의 지적 수준에 맞는 읽기와 쓰기가 병행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통합교과 학습을 위한 진도 역시 빨리 나가는 것보다 충분한 시간을 들여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특히 어떤 주제를 미리 생각하는 예습은 논술과 심층면접에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창의력 배양을 위해서도 가장 바람직한 학습법이라고 할 수 있다.
▶ 수학
수학은 조기진도의 주요 대상이다. 수학만큼 진도가 가시적으로 보이는 과목도 드물다. 이 때문인지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고교 1학년 10-가를 배우면 늦은 게 아니냐고 물어오는 학부모도 흔히 보인다. 심지어 초등학교 5학년 여름방학 때 중학교 과정을 시작해서 6학년 때 끝내야 한다는 초조함을 드러내는 학부모도 있다.
모든 교과가 다 그렇지만 특히 수학은 한 단원의 개념을 완전히 이해한 뒤 응용문제로 그 내용을 충분히 다져야 다음 단계로 쉽게 넘어갈 수 있다. 이렇게 넘어가는 과정의 한 부분만 소홀히 해도 그 뒤의 전 과정이 허물어지는 사례는 주위에 흔하다. 게다가 이 같은 문제점은 원인을 발견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문제풀이 분량만 늘인다거나 교재를 몇 번씩 바꾸는 땜질 처방만 되풀이한다. 이러다 보면 결국 학습 의욕을 상실하게 되고 수학 자체에 흥미를 잃게 된다.
대부분의 수학 교사들은 중3 때 고교 과정의 수학을 모두 끝낸다고 해서 고교에 진학해 수학을 잘 하는 것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고1 때 수Ⅰ·Ⅱ에 몰두하는 것보다 10-가, 나 과정을 충분히 다져놓는 것이 효율적이라고도 한다. 진도에만 매달리다가는 기본을 다지는 학교 수업에 충실하기 어렵고, 이는 수능시험에서 자주 다루어지는 생소한 유형, 창의성을 요구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현저히 떨어뜨린다. 모의고사에서 줄곧 고득점을 하다가 실제 수능시험을 망치는 수험생들 상당수가 조기진도의 부작용에서 벗어나지 못한 경우라는 것이다.
▶ 영어
영어는 조기진도의 문제라기보다 지나친 조기교육이 우려의 대상이 된다. 많은 학부모들이 초등학교에서 영어를 배우기 훨씬 전부터 학원에 보내고, 방학 동안 캠프나 해외 어학연수를 보내는 게 유리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생산성 측면에서 따져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취학 전 유아들을 대상으로 한 지나친 조기교육 열풍은 과연 투자한 시간과 돈만큼 성과를 거두고 있느냐는 측면에서 동의할 수만은 없다. 초·중학생들의 올인식 영어 교육도 비효율적인 사례가 자주 보인다. 해외 어학연수를 다녀온 초등학생이 해외여행 자체를 꺼리게 된다든가, 영어학원 진도나 과제물 때문에 다른 과목을 공부할 시간이 없다든가 하게 되면 영어는 학생들에게 고통이 되기 십상이다.
학년이 올라감에 따라 영어 자체에 대한 교육 못지않게 영어권 국가의 문화나 역사, 교양과 배경지식을 쌓는 간접적인 학습도 중요해진다. 문장이 어렵고 단락이 길어질수록 문자 그대로의 해석을 넘어 내포된 의미를 파악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수능 영어에서도 고득점을 하기 위해서는 영어 실력뿐만 아니라, 언어 영역에 적용되는 풀이 방법을 알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말 어휘 실력과 독해 능력이 없으면 고급영문의 해석과 이해도 어렵다는 얘기다. 시간 투자의 순위와 정도는 이 같은 전제 아래 학생의 흥미나 적성 등을 감안해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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