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국장을 끓일 때 나는 독특한 풍미에 입안 가득 침이 고이고 새콤·시큼한 깍두기 맛에 장모가 담근 매실주가 생각난다는 외국인이 있습니다. 순두부찌개를 즐기며 쌈장과 고추장에 풋고추를 찍어 먹을 정도로 한국의 발효 장류에도 매료됐답니다.
경북대 사범대학 영어교육과 앤드류 핀치(56·Andrew E. Finch) 교수. 영국 웨일즈지방 출신으로 여느 한국인보다도 토종 한국적인 입맛과 한국사랑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팔공산 자락에 위치한 콩 요리 전문점에서 그를 만나 우리네 문화와 얼, 음식에 푹 빠진 사연과 대학의 교육체계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영국 브리스톨 대학에서 음악(석사)을 전공했고 맨체스터 대학에서 교육학(석사)과 영어교육학(박사)을 전공한 핀치 교수가 한국과 첫 인연을 맺은 이유는 바둑 때문이다. 영국바둑클럽 회원이었던 그가 오묘한 바둑의 수를 익히려 왔다가 한국에 머문 지 17년이 됐다.
"'물바둑'이던 내가 '된장바둑'(현재 5급)을 배우게 되면서 우연히 한 재미교포가 썼던 책을 읽고 한국에 대해 크게 감명을 받았습니다." 안동대학 원어민 교수로 자리를 잡고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한국문화도 접하게 됐다. 스승은 바로 우리나라 초등학교 교과서였다.
"효와 선비정신은 한국적인 정신문화입니다. 신라 충신 박제상과 망부석 설화, 남명 조식선생의 엄격한 실천주의적 가르침이 오히려 서구문명 지향적인 한국에서 사라질까 우려 됩니다."
그는 책으로만 한국을 본 것은 아니다. 등산과 사찰 탐방을 통해 한국의 산과 불교문화도 접했다. 소백산과 희방사는 가장 인상에 남는다.
그는 또 30년 넘게 소식(小食)과 채식주의를 고집해 왔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밥과 채소요리가 풍부해 행복했었죠. 그런데 자꾸 지인들이 불고기와 갈비를 대접해 당황했던 적이 있어요."
2001년부터는 정년이 보장되는 경북대 영어교육과 교수로 채용됐다. 한달에 한 번은 부인 박희본(경북대 인문대학 영어영문과 강사) 씨와 함께 찾는 식당 '콩 이야기'는 동료교수의 소개로 알았다. 이 곳의 구수한 청국장 냄새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라는 것. 지금은 회식자리가 있으면 먼저 청국장 먹으러 가자며 선수를 칠 정도이다.
"한국 대학생들은 순수하고 부지런하며 열심히 공부합니다. 그러나 그 성과는 미미합니다. 효과적인 공부방법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입시위주의 주입식 교육에 대한 비판이었다.
"바둑을 배울 때 기원에서 어린 학생과 대국을 가진 적이 있죠. 책을 통해 수의 패턴을 잔뜩 익힌 나로서도 번번이 질만큼 한국 학생들은 고차원적이며 창의적 두뇌를 가진 것을 보고 놀란 한편, 중'고등학교의 저차원적인 주입식 학습이 대학까지 이어지는 것에 다시 한 번 더 놀랐죠."
교육학자로서 당연히 이런 단점을 극복할 교수법이 필요했고, 그래서 만든 그의 독특한 강의법이 'Learning By Doing(직접 해봄으로써 배우기)'. 수업과정을 학기 전에 모두 인터넷에 공개하면 학생들은 그룹별로 할당된 과제를 찾거나 주제에 따른 프리젠테이션을 스스로 준비하고 공부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평가방식도 다르다. 경쟁보다는 협동과 노력에 따라 가중치를 두고 학생들끼리 자체 평가를 해 이를 학점에 반영한다.
"홍익인간의 이념이 있죠. 이 말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자 교육철학입니다. 교육에서 학습에 대한 동기유발은 최우선 되어야 하며 그 다음으로 흥미와 공부하는 목적을 불러일으켜야 개인의 재능을 십분 발휘하게 되는 거죠."
이 때문에 그는 교육학자로서 요즘 한국에서 찾은 홍익인간의 이념을 교육현장에서 실천할 방법에 대한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전생에 한국인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가끔 든다는 핀치 교수는 영혼이 맑은 대구의 진객임이 분명하다.
◇콩 이야기
팔공산 파계사 삼거리에서 지묘동 방향으로 약 500m 지점에 있는 오른편 작은 길로 접어들면 보이는 콩 이야기는 콩 요리 전문점.
이곳은 전량 국산 콩만을 이용해 다양한 요리를 제공하고 있다. 직접 띄운 청국장과 12가지 콩으로 지은 영양콩 돌솥밥은 웰빙식단을 선호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웰빙콩야채 샐러드를 시작으로 두부파전, 두부생나물 무침, 솔잎오리훈제 등을 차례로 내는 코스요리는 눈과 입이 즐거운 일품메뉴.
아득한 실내 분위기와 넓은 창 너머 보이는 전원풍의 경관은 식사의 멋을 한껏 더한다.
문의:053)981-9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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