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 최고기온이 35℃를 넘나들던 지난 4일 오후 대구 서부도서관을 찾았다. 밖은 불볕더위였지만 현관문을 들어서자 냉기가 상쾌하게 온몸을 휘감았다. 방학인 탓인지 평일 낮인데도 도서관은 어린이, 청소년, 성인들로 붐비고 있었다. 손순옥 열람봉사과장과 모자(母子) 열람실로 향했다.
"보세요. 이만한 피서장소가 없죠?"
말이 필요 없다. 정말 도서관이 이래도 되나 싶다. 열람실이 아니라 놀이방 분위기였다. 의자 대신 깔린 시원한 장판 위에 반바지에 티셔츠 차림을 한 엄마들과 어린이들이 퍼질러 앉아 큰 소리로 책을 읽고 있었다. 아예 책을 바닥에 펴놓고 드러누운 꼬맹이들도 있었다.
문경애(35·여·서구 내당동) 씨는 여덟 살, 여섯 살짜리 두 딸과 함께 버스를 타고 왔다고 했다. 1학년인 큰 딸은 고구려 역사를 다룬 학습만화에 푹 빠져 있었다. "처음에는 저 혼자 와서 아이들 책을 빌려갔는데, 집에 가서 권해도 애들이 흥미를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았어요. 이제는 함께 와서 책을 고르니까 아이들이 더 좋아해요."
문 씨는 의자에 앉는 습관이 들지 않은 취학 전 아동들에게 모자실이 특히 유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여름방학을 하고부터는 피서오는 기분으로 이곳을 찾고 있다고 했다.
윤성혜(34·여·달서구 용산동) 씨는 이날 처음 만 세 살짜리 딸과 함께 온 참이었다. 윤 씨는 "쇼핑센터는 시끄럽고 서점은 뛰어놀 공간이 없어 아이들이 지루해하더라."며 도서관 예찬론을 폈다. '의자 끄는 소리도 내면 안 되는' 곳으로만 알았던 도서관이 이렇게 밝고 친근하게 변한데 대해 적잖이 놀라는 눈치였다.
다섯 살짜리 아들과 함께 온 박미정(34·여·서구 비산동) 씨는 도서관에 놀러오면서 아이에게 따로 책 읽기를 강요할 필요가 없어졌다고 했다. 박 씨는 "또래 아이들이 열심히 책 읽는 모습을 보고는 경쟁심이 생겼는지 이 책 저 책 들고와 읽어달라고 조른다."며 "도서관에 오면 다른 엄마들이 아이에게 무슨 책을 읽히고 있는지 정보도 얻을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고 했다.
가족 모두가 도서관과 친해진 경우도 있었다.
지난 2월 효목도서관 '책 읽는 가족'으로 뽑힌 승민이(10·동원초 4년)네. 승민이네는 재작년부터 서울에서 일하는 아빠가 집에 돌아오는 주말이면 도서관에서 '산다'.
책을 읽다 심심하면 도서관 앞 화랑공원에서 뛰어 놀고, 더워지면 다시 시원한 어린이 열람실에서 책을 읽는다. 가끔 도시락을 싸 오기도 하고 지하 매점에서 점심을 먹기도 한다. 집에 돌아갈 때면 가족 3명이 15권의 책을 대출해간다. 엄마 이명희(41·교사) 씨는 "승민이가 책과 친해지고부터 아빠가 좋아하는 '시사 스페셜'도 곧잘 함께 본다."며 "규모가 작더라도 동네 가까운 도서관을 많이 만들어 줬으면 한다."고 부탁했다.
이처럼 도서관 나들이가 활발해진 데는 모자 열람실과 어린이 열람실이 기여한 몫이 단연 크다. 제갈선희 효목도서관 사서담당은 "3년 전 어린이 열람실을 밝은 분위기로 리모델링한 이후 가족 단위 이용객이 30% 이상 늘었다."며 "책꽂이에 쓰러진 책을 일으켜 세우거나 남을 위해 깨끗하게 책을 보는 버릇을 길러주는 것도 좋은 교육이 될 것"이라고 했다.
공공도서관마다 여름방학을 맞아 다양한 교양 강좌를 열면서 지역 문화센터 역할도 톡톡히 수행하고 있다. 효목도서관 경우 지난 달 접수한 초교생 대상 '주제독서지도'(창의성·과학·역사)는 인터넷 모집 30여 분만에 각 30명 정원이 다 차버렸다는 것. 이밖에도 도서관마다 '공개독서토론회' '동화구연' '독서논술지도' 등 다양한 강좌를 인기리에 열고 있다.
김미숙(34·여·수성구 만촌동) 씨는 "이제 도서관 오는 일이 동네 슈퍼마켙 오는 것만큼 자연스러워졌다."며 "부모가 먼저 책과 친해지면 아이들의 독서습관도 저절로 길러지는 것 같다."고 흡족해 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사진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이 도서관에만 있어요
대구의 공공도서관은 제각기 특색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중앙도서관 '국제정보센터'에서는 미국, 중국, 일본 자료 열람이 가능하며 '아메리칸 코너'도 인기다. 두류도서관 '족보자료실'은 방대한 양의 족보원문을 보존하고 족보교육을 하고 있다. 남부도서관 지도 자료실에서는 국·내외의 각종 희귀한 지도를 볼 수 있다. 서부도서관은 향토 문인들의 육필원고, 저서를 모은 향토문학관을, 효목도서관은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점자·녹음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다. 동부도서관에서는 교사가 직접 선정한 권장도서에 대한 내용 요약과 서평을 곁들인 '추천도서 맛보기'를 데이터 베이스로 구축해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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