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살아가는 이야기)할머니·어미니의 수의

제가 시집올 때, 시댁엔 할머님도 살아 계셨답니다.

팔순이 넘은 할머님이셨지만 얼마나 정정하셨는지 손자들 기저귀 빨래를 모두 널어주시고 옥상에 갖가지 채소도 가꾸곤 하셨지요.

시집온 다음해인가가 윤달이었는데, 그 해 윤달에 들어서자마자 어머니께서는 저를 데리고 서문시장에 가시더군요. 저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따라 갔지요. 그런데 어머니께서 수의 전문점에 가시더니 제일 좋은 수의 한 벌을 사시는 겁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할머님 아직도 정정하신데 '왜 벌써 수의를 사는 걸까?' '어머님은 할머님이 빨리 돌아가시길 바라시는 건가?' 하며 섭섭한 마음이 들었답니다.

집에 돌아온 어머니께서는 할머님께 수의를 보여주셨고 마음 상할 줄 알았던 할머님께서 "아가, 그래 잘 사왔다. 안 그래도 윤달에 수의를 사야된다고 말할 참이었는데…." 하시며 기뻐하시는 겁니다. 저는 할머님을 통해 윤달이 공달이라 수의나 이장, 이사 등 집안 대소사를 치르면 좋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할머님은 윤달에 수의를 사두면 오래 산다는 말이 있다며 시어머니를 칭찬하셨습니다. 전 그런 것도 모르고 어머니께 섭섭한 마음을 가진 게 부끄러워지더군요. 올해로 할머님 돌아 가신지 3년째랍니다.

어머니도 벌써 칠순이 넘으셨답니다. 그래서 이번 윤달엔 어머니께 제가 수의을 해드릴까 합니다. 어머니께서 오래 오래 사시라고 말이죠. 어머니 건강히 오래오래 사세요.

김미경(대구시 북구 태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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