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7월 31일 안동농림고등학교 교사로 부임했다. 교장 선생님께 부임 인사를 드렸더니 그 자리에서 내일 출근할 때 대학졸업증서, 교원자격증, 인사발령 통지서 사본을 원본과 같이 제출하라고 하셨다. 이튿날 3가지 원·사본을 제출하였더니 그 자리에서 원본과 대조를 해보시고 대학졸업증서 끝 부분에 '이학사의 자격을 얻었기에 玆에 증서를 수여함'에서 '玆에' 두 자가 누락되었다고 재작성해 오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전공이 수학이니 미적분에서 'Rolle 정리'라는 것이 있는데 내가 잘 모르니 설명 좀 해 주시오."하신다.
나는 사본 대조의 잘못을 여기서 보상받을 심산으로 신나게 예를 들어가며 설명을 했더니 그는 "아! 이제 완전히 알았습니다. 선생님 실력 있네요."하고 칭찬해 주셨다.
교무실에 돌아오자 선생님들이 궁금해 하면서 내 기색을 살피고 있다. 내용을 말하니, Rolle 정리를 몰라서 물은 것이 아니고 신임 교사를 시험하기 위해서 그랬단다. 교장 선생님은 임업 전공이지만 고등학교 전 과목을 다 아시는 분이라고 했다.
문교부에서도 안동농고에 이런 능력과 열성이 뛰어난 교장이 있다는 것을 알고 미국 대외원조기관(USOM)에서 보내온 농기구를 집중 지원했는데, 담당 교사는 그 기구의 사용법도 모를 뿐 아니라 설명서 해석을 못하여 애태우는 것을 교장 선생님이 원서를 해석하고 사용법도 지도해 주셨다.
1962~1963학년도까지 2년간 대학입학 자격고사를 실시했는데 그때 3학년 주임을 맡았던 내가 6개 반의 원서를 일괄 제출했더니 교장 선생님은 몇 장을 보시고 "이 원서 누가 작성했습니까?"하고 물으신다. 담임이 작성했다고 말씀 드리니 원서 하단 주의 사항을 읽어보라고 하신다. 거기에는 '이 원서는 지원자 본인의 자필로 기록할 것'이라 적혀 있지 않은가. 그래도 나는 변명조로 "요즈음 아이들이 한자를 못 씁니다. 의과대학의 醫자를 못 씁니다."하니 "어어, 선생님 큰일 내겠네, 모르는 것은 가르쳐야 하지 않습니까."하시며 서무과장을 부르더니 "지금 당장 대구에 가서 원서를 다시 사 가지고 오시오."하신다.
그는 모든 면에서 철두철미하고, 청렴결백했다. '지도자는 공평무사하고, 청렴 검소해야 하며, 근면해야 한다.'는 원칙을 실천하셨다. 또 효도도 남달라서 '언제나 일찍 일어나 노부모가 계시는 곳으로 가서 기운을 낮추고 목소리를 부드럽게 하여 옷이 더운지 추운지를 여쭈어 저녁에는 직접 이부자리를 펴 드리며 새벽에는 안부를 여쭙고 이부자리를 거두고 세숫물도 직접 가져다 바친다.'는 옛 교훈을 실천하셨다.
그때 우리 교사들의 두루마기는 양복천으로 만들어 입었는데 교장 선생님은 무명천에다 검은 물감으로 염색하여 입고 다니셨다. 그는 전통과 예절을 지키며 꿋꿋한 자세로 품행을 단정히 하여 교육자로서의 사명과 책임을 다하셨다. 나는 그분의 생활을 내가 살아가는 지침으로 삼고, 평생 그와 같은 생활을 실천하고자 노력했다.
존경하는 오계환(吳桂煥) 교장 선생님, 이 글을 통하여 경의를 표하며, 삼가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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