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와 사람] 세계적 서양화가 곽훈 화백

"원래 화가라는 것이 살아서는 고향에서 천대받게 마련이다."

세계적인 서양화가 곽훈(65) 화백이 2004년 시공갤러리 전시 이후 2년 만에 다시 고향 대구를 찾았다. 10월 29일까지 대구시 북구 태전동 대구보건대학 내 대구아트센터(053-320-1800)에서는 '곽훈 초대전'이 계속된다. 서울대 미대 졸업 후 30여 년간 미국화단에서 활동해 온 곽 화백은 최근 경기도 이천에 작업실을 마련해 한국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20일 오후 4시, 2시간 뒤 열릴 개막식을 앞두고 '작가와의 만남'이 열렸다. 곽 화백은 지인과 지역 문화계 인사들이 모인 가운데 지역에서 자신을 잘 알아주지 않는 현실에 대해 뼈있는 농담을 던진 뒤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고향'에서 여는 전시회라 그런지 곽 화백은 작품 설명하는 내내 활기를 잃지 않았다. "한국 작가들은 드로잉 전시를 잘하지 않는 것 같다."며 "드로잉은 곧 작품의 밑그림이다. 이를 보면 작가의 창작의도를 알 수 있다." 곽 화백이 설명하는 동안 자리에 앉은 내빈들은 힘에 찬 곽 화백의 말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귀를 기울였다.

"나를 '기(氣)의 작가'라고 규정하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곽 화백의 작품 속에서 보이는 '생명에 대한 관심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묻는 관람객의 질문에 곽 화백이 처음 던진 말이다. "작가라면 누구나 생명에 관심을 가지게 마련이다. 나는 단지 이를 내 나름대로 표현했을 뿐인데 바로 '기의 작가'로 부르더라."며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이 시간의 중요 화제는 고향 땅인 대구 달성에 지으려는 '개인 미술관'에 관한 것이었다. 곽 화백은 이에 대해 설명할 것이 많은 양 꽤 긴 시간 동안 답변했다. 곽 화백은 지난 4월 본지를 통해 '달성군 내에 미술관을 지어 소장 작품을 모두 기증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에 비해 미술관에 대한 곽 화백의 신념은 더욱 확고해진 것 같았다.

"누구나 한 번은 죽게 마련이다. 내 사후에 작품을 자식(곽 화백에게는 아들이 한 명 있다.)에게 물려줘 봤자 자식 버리는 것밖에 안될 것"이라는 것이 곽 화백의 생각이다. 자식이 선친의 작품을 팔아 호의호식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내린 결론이다. 그래서 곽 화백은 자신의 작품을 모두 달성군에 기증하려 한다. "나이 70이 넘으면 추진도 못해볼 일"이라며 "고향 달성을 위해 무슨 일이라도 하겠다."는 심정으로 일을 추진하고 있다.

"아들한테는 말도 안 했다."는 곽 화백은 "아내도 내 얘기를 듣더니 흔쾌히 승낙했다."며 아내의 용단에 고마워하기도 했다. 곽 화백이 이런 결심을 하게 된 것은 세계를 무대로 돌아다니며 느낀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 유명한 도시에는 반드시 이를 대표하는 미술관이나 문화 명소가 있다."는 곽 화백은 "문화가 없는 도시는 기 빠진 사람과 같다. 대구를 세계적인 도시로 만들기 위해서도 미술관 건립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곽 화백은 이를 점진적으로 추진하려고 한다. 건물만 덩그러니 지어놓고서는 미술관 운영이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주변에서 미술관 건립을 도와주고 있는 지인들과의 토론 끝에 내린 결론이다. 곽 화백은 "먼저 나무를 심고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을 먼저 조성하려 한다. 그리고 자그마한 전시회를 계속하면서 결과적으로 미술관 건립으로 유도하려 한다."고 구상을 설명했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대구시나 달성군청의 협조. 기존의 관 주도형으로 알맹이 없이 건물만 덩그러니 지어놓는 과시형 사업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 장기 프로젝트로 제대로 된 미술관을 짓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부분이다. "모두가 자랑할 수 있는 문화공간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어느 한 사람의 힘만으로 힘들다. 지역민 모두가 나서야 한다."고 곽 화백은 역설했다.

곽 화백은 "문화가 없는 도시는 반드시 죽게 돼있다."며 여건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구상이 현실화되는 것을 지켜봐 주고 지원해줄 것을 당부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겁(劫)/소리', '안양루에서 무량수전을 바라보다' 등 설치 작업과 드로잉, 회화 등 80여 점을 감상할 수 있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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