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우리는 자연장"…송 씨 가문의 쉽지않은 선택

27일 대구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의 한 야산. 울창한 대나무 숲을 헤치고 나오자 널찍한 봉분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터 중앙에는 대리석 좌판과 '은진 송 씨 가창종친회의 제단(恩津宋氏秋坡公後裔 見龍祖下嘉昌宗祭壇)'이라는 뜻의 '입석(立石)'이 자리잡았다. 봉분도, 묘비도 없는 이 곳은 은진 송 씨 가창종친회의 가족공원 묘터.

앞으로 이승을 떠나는 후손들은 이 곳에서 '자연장(自然葬)'을 치르고 흙으로 돌아가게 된다. '화장(火葬)'한 유골은 그대로 흙과 섞여 땅에 묻힌다. 이름과 생년 월일, 사망일자가 새겨진 가로·세로 30cm의 표석이 남는 전부다.

봉분을 만들고 묘비를 세우는 전통적인 매장 풍습은 끊임없는 논란거리다. 환경훼손과 산림 잠식 등 폐해가 심각하기 때문. 젊은 세대들에게 한 때 새로운 장묘문화로 각광받던 납골당도 산을 갉아먹고 분묘 내부에 벌레가 생긴다는 등의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다.

은진 송 씨 가창종친회가 선택한 '자연장'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최적의 선택이다. 자연장은 유해를 관에 넣어 땅에 묻는 매장이나 화장 후 안치하는 납골당과는 다르다.

그러나 아직 이 곳에 묻힌 후손은 없다. 하지만 은진 송 씨 가창종친회 16대 조부인 송현용(宋見龍)의 후손 30여 명은 점차 이곳으로 이장될 계획이다. 앞으로 사망하는 친족도 모두 여기 묻힌다. 하지만 가족공원의 면적은 불과 30여 평에 불과하다.

송 씨 집안에서 가족묘 조성을 시작한 건 5년 전. 음력 10월이면 한달 내내 지내야 하는 묘사와 수십 기에 이르는 묘를 관리하는 것이 점점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닥쳤다. 젊은 세대들은 벌초조차 오지 않고 해마다 묘사와 산소 관리에 들어가는 품이 만만치 않았다. 가족 납골당을 만들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화장실과 주차장 등 제반 시설을 갖춰야 하고 습기, 벌레 등을 막기 위한 관리비용이 부담스러웠다.

자연장을 추진한 송휘백(59) 종친회장은 "시대는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지만 장례 풍습은 오래된 관습만 고수하고 있다."고 했다. 자연장으로 가족묘를 조성하면 윗대부터 가까운 조상까지 한 자리에 모실 수 있고 묘사나 벌초 등 관리가 편리하다는 것.

결단을 내리기까지 진통도 적지 않았다. 연세가 많은 집안 어른들은 "묘를 안 쓴다는 게 말이 되냐. 옛 풍습을 그대로 저버리면 큰 일난다."며 발끈하기도 했다.

집안 끼리 다툼도 적잖았다. "이미 모셔 놓은 조상묘를 옮길 이유가 없다."는 의견도 나왔다. 형편이 좋아 거창하게 묘를 쓴 집안에서는 "왜 우리가 사정이 좋지 않은 친척들과 함께 묘를 써야 하냐."며 고개를 돌리기도 했다는 것.

그러나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자연장을 추진함에 따라 반대는 점차 누그러졌다. 가족묘 자리에는 원래 16대 조부의 묘소가 있었다. 이 터를 트고 대리석 좌판과 입석을 세우니 비용도 거의 들지 않았다고 했다.

"조상을 모시는 방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뜻을 새기는 것이 중요하지요. 풍수학이나 음양오행설로 포장된 사치와 유행을 따르지 않는 것은 후손들의 의지이자 조상의 뜻이기도 합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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