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후 서울 여의도의 국민은행 본점에서 공기총을 들고 인질소동을 벌인 정모(32)씨는 지난달 국민은행 강남 PB(프라이빗뱅킹)센터 권총강도와 마찬가지로 청원경찰이 배치돼 있지 않은 귀빈실을 노렸다.
이날 전용케이스에 공기총을 숨긴 채 국민은행 본점 지하주차장에서 1층 로비로올라간 정씨는 "어디 가느냐"는 청원경찰의 질문에 "영업점으로 간다"고 말했으나 실제로는 VIP룸으로 가서 여직원 1명을 인질로 붙잡았다.
그는 이어 은행장실로 가는 임원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시도하다 청원경찰과 경비원에게 둘러싸여 몸싸움 끝에 붙잡혔다. 이 과정에서 정씨는 공기총 1발을 발사, 주변 고객과 은행 직원들을 공포에 떨게 하기도 했다.
이번 사건은 도심 한복판의 대형 시중은행 본점조차 단 한 명의 외부인이 총기를 들고 들어가 대담무쌍한 인질극을 벌일 수 있을 정도로 경비가 허술하다는 사실을 보여 줘 시민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정씨는 지하 주차장에 승합차를 댄 직후 신분 확인 요청에 응하고 방문증을 받았다. 위험물건 소지 여부를 검색하는 절차가 없었기 때문에 웬만한 사람도 알아 볼 수 있는 공기총을 담는 전용 케이스를 버젓이 들고 1층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많은 돈을 맡기는 자산가들이 불편해할까봐 고객 상담 전용 공간에 경비원을 배치하지 않는 관행을 악용한 범죄가 또 다시 서울 한 복판에서 발생했다는 점도 주목되는 대목이다. 더욱이 국민은행 측은 보름여 전 유사한 사건을 겪었으면서도 VIP실에 경비원을배치하지 않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 '안전 불감증이 심각하다'는 지적을 면키 어렵게 됐다.
지난달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 국민은행 강남PB(프라이빗뱅킹)센터에서 발생한 은행 권총강도 사건 역시 이런 허점을 노렸기 때문이다.
당시 범인 정모(29)씨는 자산관리 상담을 받는 척하다가 이틀 전 한 실내사격연습장에서 훔친 권총을 가방에서 꺼내 지점장을 협박, 현금 1억500만원을 받아낸 뒤 현관 안내를 받으며 은행을 유유히 빠져 나왔다.
귀빈용 별도공간에서 벌어진 이번 두 사건과 대조적으로 객장에서 벌어지는 은행강도 사건은 몇 분만에 진압되는 것이 보통이다.
가스총 등 진압장비를 갖춘 경비인력이 버티고 있는 데다 경찰 및 경비업체와 연결된 비상벨도 설치돼 있기 때문이다. 지난 9월14일에는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 모 은행 지점에서 정모(46)씨가 여자손님을 인질로 잡고 흉기로 위협하며 직원들에게 돈을 요구하다 2∼3분만에 청원경찰이 쏜 가스총을 맞고 붙잡혔다.
작년 12월에는 울산 남구 달동의 모 은행 지점에서 한모(23)씨가 객장으로 들어가던 40대 여성을 흉기로 위협해 인질로 붙잡았으나 얼마 되지 않아 청원경찰이 쏜 가스총을 맞고 20여m를 달아나다가 검거됐다. 작년 4월에는 경기 남양주시 덕소읍 모 은행 지점에서 청송감호소(현 청송 제3 교도소) 출소자 이모(47)씨가 티셔츠 안쪽에 오른손을 넣고 흉기를 든 것처럼 가장해 창구에서 소동을 벌이다가 '맨손 은행강도'라는 사실이 탄로나 직원들에게 붙잡히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귀빈용 공간에 경비원을 둘 경우 상담 분위기를 해칠 우려가 있다며 이를 꺼리는 은행측의 사고방식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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