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교단에서) 창의성의 싹을 틔우는 아주 쉬운 길

1970년대 중학교 시험 문제에 '배구공의 색깔은 ( )이다.'의 괄호를 채우라는 문제가 있었다. 학생들은 '흰색'이라고 답했다. 선생님은 틀렸다고 했다. 교과서에 '백색'이라고 되어 있었기 때문에 정답은 '백색'이었다.

그때의 교육은 어떻게 하면 많은 지식을 이른 시간 안에 전달하고 주입할 수 있을까가 문제였다. 책에 새까맣게 줄을 치면서 외우는 방법이 최고였다. 선생님들도 흔히 말하는 '빡빡이 숙제'(공부한 흔적으로 연필 자국이 빼곡하게 들어찬 연습장을 제출해야 하는 숙제')를 내는 일에 큰 자부심을 느꼈다. 자습 시간에 소설책이라도 들고 앉아 있으면, 뒤통수 얻어맞고 책을 빼앗기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웬만한 문화 공간은 학생 출입 금지 구역이었다.

지금 교육은 어떻게 하면 학생들의 문제 해결력을 기를 수 있을까가 문제다. '창의성, 사고력, 체험 학습, 논술' 등의 용어들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학생 개인의 문제 해결력, 창의성 신장이다. 독서 활동이 강조되고, 학생 동아리 축제 등 문화 활동이 강조되고 있다. X-스포츠에 심취한 청소년들도 많다. 교사들도 자기 주도적 학습력을 기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참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그런데, 최근 어느 초등학교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쓰레기를 재활용하면 어떤 점이 좋을까?'라는 문제를 냈다. 어떤 아이가 '쓰레기가 줄어든다.'고 답했다. 선생님은 틀렸다고 했다. '환경 오염을 줄일 수 있다.'가 답이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아이의 고민은 시작된다. 내 생각에는 분명 맞는데 왜 틀렸다고 하지?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답해야 하지? 이런 과정을 몇 번 거치면서 아이는 어른들이 정해 놓고 요구하는 답을 쓸 수밖에 없다. 엉뚱한 상상이나 창의적인 생각의 싹이 송두리째 뽑힌다.

프랑스 어린이가 가장 많이 쓰는 단어 2위가 '왜?'라고 들었다. 프랑스 어머니들은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엉뚱한 질문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을 해 준다고 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왜?'라는 질문을 자주하면 '되바라진 놈'이 된다. 학교에서조차 진도를 방해하는 녀석, 수업 분위기를 깨뜨리는 녀석, 버릇없이 어른 말에 토 다는 녀석이 되고 만다.

요즘 도깨비 행세를 하는 논술! '왜?'라는 물음에 대해 논리적으로 답해줄 수 있는 교육이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아이들이 어른의 답이 아니라 스스로의 답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자기만의 생각과 관점을 인정받을 때 자신감이 생긴다. 그렇게 얻은 자신감이 창의성의 싹이다.

'쓰레기를 재활용하면?', '쓰레기가 줄어들어요.', '그래 맞아. 대답 잘 했어. 그밖에 좋아지는 다른 점은 없을까?'

박정곤(대구시 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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