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 한국사 능력검정시험의 활용

11월 25일 제1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이 치러진다. 학생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우리 역사에 대한 관심을 확산 심화시키는 계기를 마련하고, 전 국민이 우리 역사에 대해 폭넓고 올바른 지식을 공유함으로써 균형 잡힌 역사의식을 갖도록 하기 위해 시행하는 이번 첫 시험에 1만 6천5백70명이 응시했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주관 부처에서야 몇 년 동안 준비했겠지만 일반에게 고지된 것은 불과 몇 달밖에 되지 않는데 이렇게 큰 호응을 받게 된 것은 우리 역사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더구나 이 시험으로 당장 어떤 보상이 주어지는 것이 아님에도 이렇게 따뜻하게 호응하는 것은 평소 국사교육의 부족을 안타까워하면서 이를 시정하기 위해 노력해 왔던 여론의 도움이 컸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은 우리 국사교육의 허점을 보완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고안 계획되었다. 과거 몇 년 동안 일본 교과서의 한국사왜곡과 중국 동북공정의 한국고대사 말살 책동이 국민의 분노를 불러왔는데, 이럴 때마다 여론은 '그러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국사교육을 강화하는 길뿐이다.'고 결론지어 주었다. 이렇게 모인 여론이 정책으로 동력화되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은 교육부를 통해서만이 가능했다. 수업시수와 전담교사를 늘리는 문제나 교육과정을 개편하고 교재를 개발하는 것은 역시 전담부서를 통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러나 국사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국민적 합의가 교육부로 넘어가기만 하면 더 진전되지 않고 거기서 주춤거리고 말았다. 국사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엄숙한 명제가 교과이기주의의 벽을 넘지 못했던 것이다. 벌써 몇 번이나 그런 좌절은 되풀이되었다.

학교 교육에서 국사교육이 도외시되는 것과 때를 같이하여 정부와 공공기관의 시책도 국사가 경시되는 조치들이 암묵적으로 진행됐다. 사법고시와 행정고시 등에서 국사 시험이 폐지됐다. 이는 역사적 소양이 제대로 없어도 고급 공무원이나 공직자로 진출할 수 있게 된 것을 의미했다. 각종 승진시험에서도 국사 시험은 줄었다. 대학의 교양 필수과목에서도 국사는 퇴출됐다. 이런 상황에서 일반국민에 대한 국사 교육은 방송매체의 사극이 전담하고 있다는 자조 섞인 농담들이 오가게 됐다.

이런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들은 국사 연구와 편찬, 국민의 역사교육과 역사의식의 고양에 일정 책임을 지고 있는 국사편찬위원회에 무거운 압박으로 다가왔다. 국사편찬위원회는 중고등학교 교육을 통해서 국사교육 강화를 모색하는 한편 학생과 일반국민을 상대로 직접 국사교육을 강화하는 방안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고등학교 교육을 통한 국사교육의 강화는 굳이 여기서 언급하지 않겠거니와 학생과 일반국민을 상대로 한 국사교육 강화방안으로 거론된 것이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조선왕조실록을 인터넷에 띄워 국민 각자가 조선왕조실록 탐구에 참여함으로 역사의식을 높이는 방안인데, 올해 초 개설한 이후 벌써 82만여 명이 방문했다. 다른 하나가 바로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이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은 한국사 전반에 걸쳐 역사적 사고력을 평가하는 것으로서 역사의식을 통해 고차원적 사고력과 문제해결능력을 육성하는 것이 목적이다. 따라서 국민 각자는 자신이 한국사에 대해 얼마나 깊은 지식과 소양을 갖고 있는지를 이 시험을 통해 검증해 볼 수 있다. 이 검정시험은 자신이 현재의 위치에서 얼마만한 역사적인 소양을 쌓고 있는가에 대해 검증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은 활용하기에 따라서는 학교의 국사교육 못지않게 국민의 국사교육 진작과 역사의식 함양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이것은 토플 등의 영어자격시험이나 최근에 증대되고 있는 한국어능력검정시험이 그 활용도를 점차 증대시키고 있는 것과 궤를 같이할 것이다. 활용전략에 따라서는 그런 어학 시험보다도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정부가 국가공무원의 선발이나 승진 때에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의 일정 수준 이상의 점수를 요구한다면 국가관이 더 분명한 사람을 공직자로 선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또 기업체 입사시험이나 승진시험에서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의 일정 수준 이상 자격을 요구하게 된다면, 국사교육은 국민 각자가 일상생활 속에서 스스로 수행하게 될 것이다. 그런 효과를 기대하면서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시작한다.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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