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아줌마들이 만들어준 음식도 맛있고 선물도 좋았지만 그보다는 '크리스마스 전에 꼭 오겠다.'던 약속을 지켰다는 사실이 더 저희들을 기쁘게 했어요. 많은 분들이 '또 만나자.'며 손가락을 걸지만 그 약속을 지키는 분은 별로 없거든요."
첫 추위가 기승을 부린 3일 오전 11시 쯤, 포항 앞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어린이 복지시설 선린애육원 앞마당에 삼정P&A 봉사단원 40여 명이 칼바람을 뚫고 도착했다. 이들은 커다란 천막 2동을 설치하고 그 안에 임시 포장마차를 차렸다. 이내 먹음직스런 떡볶이, 어묵, 붕어빵이 익기 시작했다. 봉사단원들과 아이들이 마치 포장마차 놀이를 하는 것 같았다.
◆포장마차 정경
"아줌마, 떡볶이 한 접시 주세요." "뜨겁다. 조심해서 먹어라." "저는 오뎅 주세요." "오뎅보다는 어묵이라는 말이 더 좋은 것 같은데…" "에이, 그래도 오뎅이라는 말이 더 먹음직하잖아요." "아줌마, 저기 저 아저씨가 우리보다 더 많이 먹어요. 이러다간 우리 몫 줄어드는거 아녜요?" "그럴지도 모르겠다. 아줌마가 혼내줄테니 걱정말고 기다려."
아이들은 엄마나 아빠, 누나를 대하는 것처럼 봉사단원들과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봉사단의 장춘식 부장은 "형식 따지지 않고 서로 자주 편하게 만나서 그럴 것"이라고 했다. 이들의 첫 만남은 지난 2003년 이맘때였다. 느닷없이 찾아온 삼정봉사단원들은 전구를 갈아주고 컴퓨터와 놀이기구 등을 수리해 준 뒤 '다음에 또 보자.'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다시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작년 봄에는 떡을 해 왔고, 연말에는 고구마를 가득 삶아 와 한참을 놀아주고 갔다. 그리고 올해 어린이날과 추석을 앞두고도 찾아왔고 그 때 '크리스마 전에 보자.'더니 이번에는 포장마차와 함께 온 것이었다.
◆방안 풍경
바깥에서 포장마차가 한창 열기를 뿜을 때 방안 분위기도 비슷했다. 아이들은 저마다 새 신발 한 켤레씩을 들고 있었다. 신발은 메이커만 같을 뿐 디자인도, 색깔도 다 달랐다. 김기춘 과장은 "같은 디자인으로 공동구매하면 편하기야 하겠지만 행여 놀림감이라도 될까봐 80켤레 모두를 서로 다른 것으로 준비했다."고 말했다.
이 신발은 직원들이 각자 구입했다. 신입사원 남선연(여·23) 씨는 "입사 후 처음 맞는 연말이어서 송년모임에 대한 기대가 컸는데 이렇게 의미있는 송년회가 될 줄 몰랐다."며 자신이 사 준 신발을 신고 기뻐하는 기식(가명·5)이의 얼굴에 연신 뽀뽀를 해댔다.
◆봉사단원들이 가고 난 다음
선린애육원 이희동 원장은 "이런 분들이 참 봉사자, 참 기부자"라고 했다. 유난떨지도, 생색내지도 않고 애들을 자연스럽게 대해주고 세심한 준비에서 참사랑을 느낄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삼정P&A 봉사단원들이 애육원을 떠날 때도 아이들은 밝은 얼굴로 "고맙습니다."고 짧막하게 인사했다. 조만간 또 만날텐데 요란스럽게 인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이유. 손가락 걸고도 오지 않는 분들보다는 '그냥' 와서 재밌게 놀아주는 삼정아저씨들이 최고란다.
복지시설에 있는 어린이들에게까지 믿음과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삼정P&A봉사단은 5일 제1회 자원봉사자의 날에 대통령상을 받는다.
포항·박정출기자 @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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