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초가 되면서 서민들을 울리는 것은 바로 뜀박질하는 물가다. 오르면 다시 내리지 않는 것이 '물가의 법칙'. 하지만 수년째 이 법칙을 거부하면서 고집스럽게 '1천 원'을 고수하는 가게들이 있다. '1천 원의 행복'을 나누는 사장님들을 만났다.
#천원 자장면
지난 13일 대구시 중구 교동에 위치한 중국음식점 '만리장성'. 입구에 '자장면 1천 원'이라는 간판이 눈에 띄었다. 실내에 들어서면 시내 다른 중국집과 별 차이가 없지만 이 가게는 3년째 자장면을 1천 원에 판매하는 별난 중국집이다.
2천 500~3천 원 하는 다른 중국집에 비해 양이 적은 것은 아닐까?
주인 김재만(47) 씨는 "시내 중국집의 자장면과 비교해도 맛·양·질이 동일하다."고 손사래를 쳤다.
가격이 싸기 때문에 이 업소 매출의 80%는 자장면이 차지한다. 하루에 팔리는 자장면은 100그릇 정도. 손님들은 미안해서인지 대부분 자신이 먹은 그릇을 손수 주방으로 가져다주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한다.
이경식(69·대구시 수성구 만촌동) 씨는 "일주일에 2, 3번 이곳을 찾는다."면서 "불황에 1천 원으로 배를 든든하게 채울 수 있는 곳이 여기 말고 어디 또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자장면이 1천 원이라는 소문이 나면서 근처 노숙자들도 즐겨 찾고 있다. 부인 차순덕(47) 씨는 "노숙자들이 먹고 돈이 없다고 해도 그냥 보낸다."면서 "오르는 물가로 힘들지만 고객과의 약속으로 생각하고 1천 원을 고집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년째 자장면을 1천 원에 판매하기 때문에 경영에 어려움도 많다. 최근 밀가루 가격이 인상된 데다 채소값이 갈수록 오르고 있기 때문. 오히려 주변 상인들이 '그렇게 팔아서 남는 게 있느냐'며 가격을 올리라고 종용할 정도이다.
하지만 주인 김 씨는 단호하다. "고객의 대부분은 지갑이 얇은 어르신들이고 노숙자들도 종종 옵니다. 원가 상승으로 마진이 별로 남지 않지만 서민들에게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가격을 당분간 올리지 않을 것입니다."
#천원 왕대포·조기
지난 14일 오후 대구시 중구 향촌동 대보백화점 뒤편에 있는 '놋그릇 왕대포'. 가게에 들어서자 술손님 서너명이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놋쇠잔에 철철 넘치도록 담긴 막걸리와 조기, 깍두기, 쌈배추, 고구마, 비지찌개, 시래기국 등 안주로 푸짐했다.
한상 가득 차려진 술상의 가격은 불과 1천 원. 주머니가 얇은 주당들로부터 인기를 한몸에 받고 있다.
어르신들이 고객의 80%를 차지하고 젊은이들도 종종 들른다고 했다. 이집을 한번 찾으면 반드시 단골이 된다고 주당들은 자랑했다.
막걸리를 마시고 있던 정성균(70·대구시 서구 평리동) 씨는 1주일에 2, 3번 이곳을 즐겨찾는다. 정 씨는 "막걸리 2, 3잔을 걸쳐도 2천, 3천 원에 불과하다."면서 "한잔만 마시고 나가기가 미안할 정도"라고 말했다.
신태철(55·대구시 북구 대현동) 씨도 "싸고 푸짐한 안주보다 주인의 후덕한 인심이 더 감칠맛이 난다."고 웃었다.
주인 박영옥(53·여) 씨는 "솔직히 1잔만 팔면 남는 게 없다."면서 "어르신들과 서민들에게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장사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장사 초반엔 막걸리 한 잔과 조기 1마리, 깍두기로 시작했지만 해가 거듭될 수록 안주의 가짓수는 늘어났다. 막걸리 1잔을 추가할 때마다 살이 통통히 오른 조기가 안주로 추가로 제공된다.
주인 박 씨는 "안주 가짓수를 줄이면 마진이 많이 남겠지만 그렇게 못하겠다."면서 "지갑이 얇은 손님들에게 안주 한가지라도 더 주고 싶다."고 말했다.
모현철기자 mo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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