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빠른 것에 반대한다

길을 가다 보면 진기한 광경들이 눈에 띈다. 한 손으로는 군것질을 하면서 한 손으로는 휴대전화 문자를 보내는 젊은이들. 네 손가락으로 전화기를 지지한 채 엄지만으로 눌러대는 빠르기가 그야말로 입이 벌어질 지경이다.

빠른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배달음식은 주문 후 10분이 보통이고 인터넷 택배는 다음날 배송이 원칙이다. 오토바이 퀵서비스는 또 어떤가? 시내 같으면 30분 안에 달려오고 30분 안에 가져다준다. 인터넷과 휴대전화로 통신전달의 빠르기가 빛의 속도로 변하면서 사람들은 점점 느린 걸 참아주지 않는다.

이제는 정말이지 빠르지 않은 것은 인기가 없다. 필자같이 컴퓨터 워드도 느리고 계산도 느리며 인터넷 '요즘 뜨는 이야기'를 읽으며 연일 뜨악해 하는 사람은 점점 따라가기가 힘들어지는 세상이 됐다.

이제 반대로 한 번 생각해보자. 반드시 느릴수록 좋은 것은 아니지만 요즘은 오랜 시간 천천히 만든 제품들이 서서히 각광을 받고 있다. 예전에 어느 재벌가에 팔렸다는 500년 묵은 '간장'이나 충분히 숙성시킨 포도주와 위스키, 그리고 오랜 시간 잘 말린 나무로 만든 전통 목가구 등 우리 주위엔 그래도 '세월'을 상품으로 하는 경우가 꽤 남아 있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어느새 빠른 게 미덕인 사회로 진화의 가닥을 잡은 듯하다. 다른 나라에선 수십 년이 걸릴 일을 우리는 불과 몇 년 동안에 이룩했고, 우리 세대는 어릴 때의 가난한 생활이 기억에서 잊히기도 전에 선진국 문턱의 삶을 경험하는 특별한 세대가 되고 있다. 하지만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불미스런 사건들은 이제 우리가 즐겨온 그동안의 속도를 늦출 것을 경고하고 있다.

필자는 광속(光速)이 우리의 미래를 어둡게 할 것 같은 느낌이다. 속도감만 즐기다가는 롤러코스터에서 떼굴떼굴 굴러 떨어질 것만 같다. 오랜 정진이 필요한 명인이나 명창·음악가·화가를 배양하는 사회적 배양토(培養土)는 사라질 것이고 누구나 빠른 성공을 추구하며 고된 예술가의 길을 버릴 것이다.

출판계는 단기 베스트셀러만이, 디지털은 단 하루의 뒤처짐도 용납하지 않는 최신형만이, 스테디셀러가 없는 문화는 결국 베스트셀러만을 고집하여 한탕주의만이 우리 세상을 지배하게 될 것 같다. 우리가 또 몇 백 년이 지나 자랑해야 할 전통과 문화의 향기는 '세월'의 향기인데, 지금 세대는 세월이 필요한 문화를 버리고 있는 것이다.

남우선 대구MBC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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