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경옥입니다] '만족'을 모르는 병

요즘 지구촌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별난 병이 있다. 拒食症(거식증). 몇 달 전 우루과이에서 거식증의 22세 패션 모델이 숨진 데 이어 브라질 출신의 21세된 패션 모델도 이 증세로 숨졌다. 브라질 모델은 키 1m70cm에 몸무게는 38kg에 불과했다고 한다. 피골상접의 단계도 지나 거의 肉脫(육탈) 수준이라 해야 할 정도다. 그럼에도 자신이 살쪘다고 여겨 음식을 거부했다니 할 말을 잊게 한다.

거식증에 걸린 사람들은 몸이 젓가락처럼 말라비틀어져도 다이어트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아무리 주변에서 너무 말랐다고 걱정해도 믿지 못한다. 일년 삼백육십오일 음식의 유혹에 맞서 처절하게(?) 싸우는 사람들에겐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을 판이다.

빼빼 마를 수만 있다면 "죽어도 좋다." 고 한다면 분명 잘못됐다. 本末(본말)의 顚倒(전도)다. 마르고 마른 끝에 마주치는 것이 창창한 나이의 죽음이라면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부자이면서도 본인은 여전히 가난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99칸짜리 집 가지고 있으면 어떻게든 한 칸 더 늘려 100칸 채우려 하고, 100칸을 이루면 또 더 큰 집 가진 자와 비교하며 자신은 가진 것이 너무 없다고 여긴다.

거식증의 말라깽이들은 남이 뭐라고 해도 자신에게 자신은 여전히 뚱뚱하게만 여겨진다. 재물결핍증의 부자는 제아무리 곳간에 재물이 넘쳐흘러도 언제나 모자라게만 여기니 만년 가난뱅이나 다름없다.

얼마전 70세로 세상을 뜬 채규식 할아버지(두밀리 자연학교장). 앞날 창창한 덴마크 유학파 청년은 불의의 자동차 사고로 전신화상을 입었다. 30여 차례나 수술을 받았지만 눈·코·입이 문드러지고 손은 녹아내려 한순간에 끔찍한 몰골로 변해버렸다. 하지만 절망 대신 당당한 자세로 평생을 사회복지운동과 대안교육에 바쳤다. "이 얼굴이 최소 6천만 원 들어간 걸작품인데 알아주는 사람이 별로 없어."라며 오히려 농담할 줄 아는 열린 가슴의 소유자였다.

키에르케고르는 돈을 마시면 마실수록 갈증이 심해지는 소금물에 비유했지만 지나친 외모 집착 역시 그러하다. 뭐든 지나치면 탈 나게 돼 있는 것이 세상 이치다. "만족할 줄 모르는 것만큼 큰 화가 없다(禍莫大於不知足)." 도덕경의 가르침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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