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필자는 글쓰기 연습을 무조건 하는 것보다 적당한 목적을 가진 자기 글로 된 요약문을 쓰는 연습으로부터 논술준비를 시작하라는 것과 요약문의 목표와 작성방법 등에 관해서 간략하게 이야기했다. 비로소 요약문을 작성해 나가면서 자연스럽게 제시문의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시각들을 비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래서 제대로 된 요약은 바로 비판의 시작이기도 하다. 건강한 비판을 하기 위해서는 제시문이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를 요약을 통해서 먼저 파악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명백하다. 논술시험에서도 제시문에 대한 요약은 가장 먼저 실행되어야하는 필수조건이다.
이제 서론, 본론, 그리고 결론의 형식을 갖춘 글을 어떤 과정을 통해서 작성하는가 하는 주제로 관심을 돌려보자. 그래서 다양한 가치를 포함하고 있는 수준 높은 예제들을 본격적으로 다뤄보기 전에 필자가 이전에 제시했던 '사람구하기' 논제를 논술작성법에 관한 형식적 분석을 통해서 차례대로 논의해보자.
논술문 작성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제시문에 관한 철저한 이해이다. 그러기 위해서 학생들은 우선 제시문 전체를 꼼꼼히 읽어보고 핵심 내용을 정리 요약해야 한다. 간혹 제시문이 길 때에는 문단별로 핵심 내용을 따로 요약하여 제시문의 논리적 구조를 파악해야 한다. 요약을 통한 논리적 구조의 분석은 제시문이 과연 무엇을 주장하는가에 대한 이해의 첩경이다.
논리적 구조를 파악한다는 말은 그리 어려운 말이 아니다. 그저 제시문이 무엇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파악한다는 말이다. 그곳에서 다루고 있는 논점과 그것은 어떤 개념을 포함하고 있는가? 그 논점에 대해 제시문의 저자가 전제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며 그것으로부터 어떤 결론을 도출하고 있는가? 그 저자의 결론은 적절한 논거에 의해서 지지되고 있는가?
그렇다면 '사람구하기' 제시문은 과연 무엇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가? 이전의 제시문을 기억해보자. 이 제시문이 든 두 가지 예들-수영을 할 줄 모르는 세 사람이 물에 빠져서 구조를 기다리는 상황에서 자기가 한 사람을 구할 수 있다고 가정하고, 첫 번째 경우에는 선택의 대상들이 전부 모르는 사람일 경우에 구할 수 있는 확률이 가장 높은 사람을 구하는 자연스러운 행동의 예와 두 번째 경우에는 그 대상들 중에 구할 확률이 훨씬 낮은 위치에 있는 어머니가 구조를 기다린다는 것-은 바로 두 경우에 사람들은 서로 다른 행동으로 반응할 것이라는 예상을 미리 전제하고 있다. 그런 가정이 감추어져 있지 않다면 이 제시문은 큰 의미가 없다.
물론 모든 논술 문제가 항상 그렇듯이 어떤 특정한 정답이 여기에는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바른 답이라고 주장하는 단계가, 엄마가 아니라 구할 수 있는 사람을 먼저 구해야 한다는 것까지일 뿐이지 이 결론을 뒷받침하는 논술의 주 부분인 그 이유와 논증적 과정까지 같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연스럽게 많은 사람들은 그런 결론에 도달하는 다른 이유를 가지게 되고, 그 논리적 과정의 정당성은 더 더욱 달라질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소위 기존의 암기식, 주입식, 결과중심적 논술의 문제점은 학생들이 이런 이유를 적절한 논리적/논증적 과정을 통해서가 아니라 요약된 해설문에 대한 암기를 통해서 가지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정답이 없다는 말은 결론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그 결론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결론에 도달하는 적절한 이유로 논증을 제시하는 과정이 다양하게 많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보통 좋은 논술문과 나쁜 논술문은 자연스럽게 구별되게 되고 점수가 판가름 나게 된다.
이런 류의 제시문을 미리 딜레마(dilemma)로 보고 접근하는 것은 아주 적절하지 않다. 딜레마의 상황은 원래 타당한 연역추리(valid deductive inference)에 속하지만, 일반적으로 한 문제에 대한 두 개의 대립된 대안들이 모두 건전하지 않은 결과들로 귀결될 때를 일컫는다. 그래서 이런 류의 문제가 도덕적 딜레마일 수 없는 이유는 먼저 '사람구하기' 논제에서처럼 분명한 선택지-구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해야만 하는-를 가정하면서 적절한 이유와 그 논증적 과정을 묻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며, 두 번째 선택지의 순간에서부터는 명확하지 않지만 적절한 이유와 논증적 과정에 의해서 선택지가 명료하게 결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느 정도의 수준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뭔가 정답을 족집게처럼 뽑아낼 수 있다는 그런 비합리적인 주장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구하기' 제시문에서 드러나는 주 개념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이 해야 할 올바른 행동(ought)에 대한 것이다. 바로 우리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다음 주에는 가치의 속성과 관련된 문제들 그리고 논술 작성의 다음 단계인 논제파악의 단계에 대해서 이야기하자.
이종왕(영남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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