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쟁이 이야기/제레미 캠벨 지음/ 오봉희·박승범 옮김/ 나무와숲 펴냄
사례1> 흑인 대학생 2명이 인종차별에 항의하기 위해 흑인 인형을 나무에 교수형 시킨 사건이 있었다. 인종차별주의자가 그런 짓을 한 것처럼 꾸민 조작극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단순한 사기극이 아니라 대학 내의 인종차별 문제를 부각시킨 수단으로 가치를 평가 받았다.
사례2> 1992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리고베르타 멘추(과테말라 시민운동가)가 과테말라에서 일어난 내전을 자서전적으로 쓴 책을 분석했다. 멘추는 이 책에서 남동생이 굶어죽는 것을 보았다고 했지만, 사실 그 남동생은 건강하게 살아있었다. 또 어린 시절을 가난하게 보냈고 제대로 배우지도 못했다고 썼는데, 실제로는 사립 기숙학교를 두 군데나 다녔다. 그러나 노벨평화상위원회는 "모든 자서전은 어느 정도 미화된다."며 멘추를 옹호했다.
사례3> 자연의 생명활동은 경이로운 방식으로 창조주의 섭리를 완벽하게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불성실하고 속이는 경향이 있다. 거미는 거미줄의 위험을 먹이가 될 곤충에게 경고할 의무가 없다. 여우도 살아남기 위해 배가 고플 때 죽은 척하는 것을 미안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배워왔지만, 이 사례들을 보면 "진실은 반드시 좋은 것이고 거짓은 쓸모없고 나쁜 것인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우리는 선의든 악의든 크고 작은 거짓말을 해왔다. 우리 사회는 그야말로 거짓과 속임수가 넘쳐난다. 삶에서 거짓은 정말 피할 수 없는 필요악일까.
'거짓말쟁이 이야기'는 아주 방대한 지식과 사상을 끌어들여 거짓말의 역사를 살피고 있다. 다윈의 진화론과 거짓말쟁이로서의 자연이라는 테마로 거짓말쟁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후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에서부터 포스트모더니즘까지 거의 모든 사상의 줄기를 더듬으며 거짓의 역사를 탐색한다.
"거짓은 삶의 편을 들고 사회를 돌아가게 하는 윤활유 역할을 하는 반면 진리는 가혹하고 위험하며 파괴적일 수 있다. 거짓말이 삶에 꼭 필요한 것이라는 사실은 존재의 무섭고 불확실한 특징이다."
인류는 진리라는 빈약하고 불충분한 음식으로는 진화 사다리에서 현재의 높은 자리까지 오는 지난한 과정을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하지만 진실이 사회에 일반적이지 않다면 거짓말은 제 역할을 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민주주의는 어떤 정부 형태보다 진실이 필요했고, 정치가의 거짓말은 어떤 범죄보다 나쁜 것으로 인식했다. 그런데 정직이 힘의 근원인 민주체제에서 거짓말은 보다 음흉하게 위력과 효과를 발휘한다. 428쪽, 가격 1만5천 원.
석민기자 sukm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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