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혼수 전쟁'

'트루바두르'는 12세기 프랑스 남부의 詩人(시인)집단이었다. 이 집단은 사랑의 시를 애송하면서 그 의미를 증폭시켰다. 궁정의 화려한 파티에서 만난 남녀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사랑에 빠지고 결혼에 이르는 사례 등을 찬양했다. 이 같은 사랑의 예찬이 일반인에게도 영향을 미쳐 뒷날 '낭만적 사랑'을 부각시키는 동력이 됐다고 한다. 이른바 이 '사랑의 혁명'은 사랑과 결혼을 하나로 아우른 셈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서양에서도 18세기 이전까지는 王室(왕실)의 결혼은 손익 계산이 철저한 '정략결혼'이었고, 貴族(귀족)들도 혼인을 통해 세력을 키우고 재산을 늘렸다. 농민들 역시 결혼을 결정짓는 데 경제적 조건이 크게 작용했다. 지금 우리나라에선 과연 어떤가. '자유연애'가 뿌리내려 있긴 하지만, 신분과 계층'교육 수준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을 뿐 아니라 돈 문제가 큰 변수로 작용하고 있지 않은가.

○…탤런트 이민영'이찬 부부의 파경을 계기로 '婚需(혼수) 갈등' 문제가 달갑지 않은 화제로 떠올랐다. 인기 연예인이라 하더라도 3억 원짜리 전세 아파트에 만족하지 못한 갈등 등이 원인이라니 新婚(신혼)을 어렵게 시작하는 서민들에겐 '너무했다'는 생각이 안 들 수 있겠는가. 물질만능주의로 치닫는 세태의 한 단면을 드러낸 것 같아 씁쓰레할 따름이다.

○…사실 요즘 부잣집끼리는 '혼수에만 몇 억 원씩 들어가는 게 예사'라고 한다. 姑婦(고부) 갈등 뒤엔 혼수 갈등이 자리 잡고 있게 마련이며, 억대 혼수도 적다고 이혼하는 사례도 허다하다니 말문이 막힐 수밖에…. 더구나 혼수 분란이 고소득 전문직 등 상류층일수록 심각하고, 중산층까지 번지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신혼 파경의 30% 이상이 혼수 문제 때문이라니 어찌 된 세태인지 모르겠다.

○…올해는 양력으로는 소위 '황금돼지해'에다 음력으론 입춘이 두 번 들어 있는 雙春年(쌍춘년)이라 그야말로 '결혼 붐'이다. 하지만 '기둥뿌리 뽑아 시집간다'는 옛말이 이르듯이, 혼수 걱정에 고민하는 예비 신부와 그에 진배없는 예비 신랑들이, 이순간도 결혼했거나 하기도 전에 헤어지는 경우도 얼마나 될까. 결혼은 낭만이 아니라 엄연한 현실이라지만, '돈으로 사랑을 완성한다'는 가치관은 달라져야만 하지 않을까.

이태수 논설주간 tspoe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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