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장 20년간 쓴 소설이 완성됐다.
86세의 전 경북대 조운석 교수가 소설 '바람과 구름'(작가콜로퀴움 펴냄)을 출간했다. 집필 도중 뇌졸중으로 쓰러져 주위를 안타깝게 했지만, 정년퇴임한 1986년 시작한 소설을 세상에 내놓았다.
조 씨는 영미소설을 전공했다. 그래서 "한국소설의 나쁜 영향을 받지 않았다. 깨끗하다"고 말했다. 서사의 부실함이나, 독자에 영합하는 한국소설의 단점을 염두에 둔 말이다.
'바람과 구름'은 자전적인 소설이다. 1920년 일제강점기의 식민지 조선을 배경으로, 경북의 어린 소년이 서울의 교동소학교에 입학하면서 시작해 해방과 한국전쟁 등 60년의 격동기를 겪는 대하소설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상.하 각권 400쪽의 방대한 분량으로 상권은 교동소학교를 입학해서 경기중학을 졸업할 때까지의 과정과 주변인물, 에피소드 등을 담고 있으며, 하권은 해방과 한국전쟁을 겪는 개인의 고통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제목 '바람과 구름'은 강자와 약자를 뜻한다. 조 씨는 "어차피 인생은 바람과 구름이 각축하는 판이 아니냐?"고 말했다. 일제 강점기 지식인의 갈등과 울분이 잘 드러난 제목이다. 당시 학교생활이 리얼하게 묘사돼 있어 교육적 가치도 높다. 등장인물의 80%가 실제 인물이고, 에피소드도 50~60%가 사실이라고 했다.
대학에서 영미소설을 강의하면서, 수많은 논문을 썼지만 정작 소설을 집필한 것은 처음이다. 그러나 그의 소설에 대한 애정은 일찍 시작됐다. 경기중학 시절 일본어로 사무라이 소설을 썼다. "결투에서 죽은 사무라이의 아들과 원수의 딸이 사랑하는 습작이었지."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상시키는 단편.
그러나 제대로 된 소설을 쓰고 싶은 열정은 대학을 정년퇴임한 후 일기 시작했다. 처음 작은 복사본처럼 가까운 친지와 나눠 보겠다고 쓰기 시작한 책은 원고지 4천여 매가 넘어갔고, 제자인 경북대 사범대 배종언 교수(영어교육학과)가 읽어 본 후 출판을 권해 두 권으로 묶어 이번에 나오게 됐다.
일일이 손으로 원고지 4천여 매를 쓴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노구를 이끌고 직접 일본 오사카성의 주변을 답사했고, 북한 지명과 위치도 일일이 새로 확인해야 했다. 최근에는 귀까지 잘 듣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부인 김진강 씨의 도움을 받아 결국 필생의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그러나 조 씨의 작업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또 다른 소설을 준비 중이다. "일제 시대 한 마을에서 일어나 2번의 살인사건을 소설로 쓸 생각"이라고 말했다.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냥 소일 삼아 하지 뭐."라고 짤막하게 말했다. 소설처럼 군더더기 없는 말투에서 바람과 구름의 담백함이 느껴진다.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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