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도록, 너 어디 갔었니
이동엽
너 참 미묘하구나 구름 사이
가벼운 바람 일렁였다, 어디 갔었니
네가 없는 풀밭에 햇살 따가웠다
그때 너 어디 갔었어, 차츰 녹음도 짙었다
네 머리카락처럼 나뭇잎들 부풀어 올랐다
머리풀 냄새 어지럽게 깔렸는데, 너 어디 갔었니
뒤돌아 볼 수 없는 나무들, 아무런 말도 않지만
나뭇잎 사이 흐르는 눈빛들 참 미묘하구나
그늘 아래 누워 있었니, 가슴 풀어 내리고
너 어디 갔었어, 저 너머 언덕도 마냥 붉었다
구름들 눈부시게 흘러 내렸다, 참을 수 없었니
옷고름 풀어 헤치고 그때 너 어디 갔었어,
한 발자국도 떼어놓을 수 없는 햇살들
햇살 아래 과일과 저 음식들, 아무도 손대지 않았지만
숲과 나무들 가로질러 먼 길에 너 어디 갔었니
돌투성이 바위산 너머, 해 떨어진 길에
저물도록…… 너 어디 있었니
일테면 시는 비누 방울을 닮았다. 한 겹 얇은 막 하나로 안팎으로 나눠진 공기 방울. 있는가 하면 없고, 없는가 하고 보면 다시 보인다. 햇살 비껴들면 영롱한 무지개도 한 줄기 서린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시의 참모습은 말의 의미에 있는 게 아니라 의미 바깥에 있다는 말씀. 말할 수 없는 걸 말해야 하는 것이 시의 운명. 그래서 시는 어쩔 수 없이 애매함의 공간 속으로 자신을 밀어 넣는다. 주술처럼, 후렴처럼 일곱 번에 걸쳐 "너 어디 갔었니"라고 속삭이는 이 시의 문맥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은 어리석은 일. 딱딱한 문어체에서 벗어나 "구름 사이" 일렁이는 "가벼운 바람"처럼 부드러운 구술체 어조에 몸을 실으면 자신도 모르게 미묘한 정서의 파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파동을 감지할 수 있어야 제대로 시를 읽었다 할 수 있을 터. 20여 년 전 이 기막힌 시 한 편 써놓고 어디론가 숨어버린 젊은 시인이 대구에 있었으니, 안타까울진저 그 재능이여.
장옥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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