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경옥입니다] 시간 가게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월말에 달랑달랑 위태로운 통장 잔고를 볼때면 "엇, 이럴 리가"하는 생각부터 든다. 어디서 뭉텅이 돈이라도 잃어버린 것 같은,엉뚱한 박탈감마저 들곤 한다.

새해인가 했더니 눈깜짝할새 한 달 서른하루가 휘리릭, 지나가버렸다. 매년 거듭되는 것임에도 갈수록 그 느낌의 강도가 세어짐은 무슨 까닭인가. 한바탕 속은 것 같기도 하고, 시간을 송두리째 도둑질 당한 것 같기도 하다. 분명 자신이 사용했으면서도 어떻게 썼는지 아리송한 신용카드처럼.

자신을 '은퇴 노인'이라고 소개한 어느 어르신이 메일을 보내왔다. 올해 77세 喜壽(희수)가 된다는 그분은 나이 한 살 더 먹게된 심정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했다. "세월은 나이만큼 가속이 붙는다는 속설이 맞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액셀러레이터를 안 밟는데도 과속으로 달려가고 있으니 남은 '老程(노정: 원래는 路程)' 감시카메라에 잡히지는 말아야지…."

요즘 만나는 사람들마다 장타령 하듯 말한다. "어이구, 10만원도 깨놓으면 후딱, 한 달도 깨놓으니 후딱."

미국 뉴욕의 웨인 쉔크라는, 50세된 남자의 사연이 하도 공교로워서 기가 막힐 정도다. 지난 12월말 시한 부 1년의 말기암 진단을 받았는데 올 1월에 100만 달러짜리 로또 복권에 당첨됐다. 생애 최악과 최고의 순간이 한꺼번에 겹쳐진 것이다. 게다가 복권은 일시불 지급이 아니라 매년 5만 달러씩 20년간 지불하게끔 돼있었다.

딱한 사정을 호소했지만 규정상 어쩔 수 없었던가보다. 처음이자 마지막 당첨금을 들고 알래스카로 사냥여행에 나선 그에게 기자가 "사고 싶은건 없소?"라고 물었다. 그가 대답했다. "시간을 사고 싶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웨인 쉔크들은 애타는 심정으로 소망하고 있다. "좀 더 시간을!" 달라고. 꼬리를 남기며 가뭇없이 사라지는 별똥별처럼 얼마 남지 않은 生(생)의 길이를 바라봐야 하는 사람에게 1분·1초의 의미는 남다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 역시 결국은 시한부 인생 아닌가.

정말이지 시간을 살 수만 있다면…. 하지만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시간 가게란 없다. 그러기에 '시간'에 관한 정의에 하나 더 추가돼야 할 것 같다.'그무엇으로도 결코 살 수 없는 것.'

전경옥 논설위원

최신 기사

07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김민석 국무총리는 20일 전남을 방문해 이재명 대통령의 호남에 대한 애정을 강조하며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그는 '호남이 변화하는 시...
브리핑 데이터를 준비중입니다...
경북 봉화의 면사무소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은 식수 갈등에서 비롯된 비극으로, 피고인은 승려와의 갈등 끝에 공무원 2명과 이웃을 향한 범행을 저질...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