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설 선물 배달맨 동아백화점 홍준표씨

"작은 정성 큰 기쁨 행복을 드립니다"

"요즘 설은 명절 같지 않다."며 갈수록 정겨움이 없어지는 설 풍경을 두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화살처럼 빠른 세월에 설 풍경도 많이 바뀌었다. 그래도 온 가족이 모여 정을 나누는 설의 의미와 느낌은 여전하다. 설을 앞두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백화점 선물 배달 직원과 수십 년간 서문시장을 지키고 있는 상인들의 얘기를 통해 설의 의미를 짚어봤다.

"작년 추석을 앞두고 대구시 북구 칠곡지역에 배달한 선물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20kg 쌀 한 포대와 귤 1상자를 30여 가구에 갖다 드렸어요. 칠곡의 한 초등학교 학부모 단체 회원들이 십시일반으로 성금을 모아 선물을 마련,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의 가정에 배달하게 한 것이지요. 생각지도 않았던 선물을 받은 분들이 좋아하시던 표정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배달을 하는 저도 덩달아 가슴이 따뜻해지고, 행복감을 맛봤습니다."

명절이면 대구에서 가장 바쁜 사람 가운데 하나인 동아백화점 영업지원팀 홍준표(48) 씨. 백화점에서 고객들에게 선물을 배달하는 일을 8년째 하고 있는 그는 지난해 추석 무렵의 가슴 따뜻한 일을 떠올리며 웃음을 지었다.

설을 10여 일 앞두고서부터 홍 씨는 1t 배달 트럭에 물건을 싣고 내리느라 쉴 틈이 없다. 동아쇼핑 지하 2층에서 각 브랜드 직원들이 포장한 선물들을 일일이 확인하고, 배달할 지역이 어디인가를 꼼꼼하게 따진다. 동선을 짜기 위해서다. "8년간 배달 일을 하다 보니 대구 곳곳을 훤히 알아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정성스럽게 배달할 물건을 트럭에 실은 홍 씨는 직접 운전을 해 대구시 중구 남산동의 한 아파트로 달려간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과 2인1조를 이룬 홍 씨는 우선 물건을 받을 고객에게 전화를 걸어 연락을 하고, 아파트를 찾아 홍삼 제품을 전달한다. 이날 하루 홍 씨는 북구 복현동, 경산시 정평동 등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배달한 물품은 포도씨유, 홍삼제품, 세제용품 등 다양하다.

"어떤 아파트를 찾아갔더니 마침 받을 분이 안 계셔서 경비실을 찾았지요. 선물이 산처럼 쌓여 있더군요. 선물을 많이 받는 분들은 크게 좋아하는 표정도 짓지 않습니다." 명절 선물이 일부에만 몰리는 '양극화'를 홍 씨는 피부로 느끼고 있다. 선물을 많이 받는 사람들은 귀한 줄 모르는 반면 적게 받는 분들은 작은 선물에도 굉장히 좋아한다는 게 홍 씨의 얘기다.

홍 씨가 배달하는 명절 선물의 품목도 크게 바뀌었다. 90년대에는 식용유, 청주 등이 주류를 이뤘으나 최근에는 웰빙 바람이 불면서 와인과 과일, 한과, 건강보조식품, 유기농 제품 등이 압도적으로 많아졌다. 정육은 계속해서 인기 있는 선물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

동아백화점은 주말이 낀 올해 설 연휴는 예년보다 짧아 선물 배송물량이 예년보다 20%가량 늘어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짧은 연휴로 직접 부모님이나 친지를 찾아뵙지 못하는 사람들이 선물로 인사를 하는 경우가 늘어날 것이란 분석. 배달 폭주에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처지가 될 것으로 걱정하면서도 홍 씨는 전달하는 선물 하나 하나에 정성을 더할 생각이다.

백화점에서 '홍 기사님'이란 애칭을 갖고 있는 홍 씨는 "명절 선물의 가장 큰 의미는 고마운 분들에게 마음을 전하는 것"이라며 "선물이 부담이 되기보단 마음을 주고받는 아름다운 우리 민족의 전통으로 유지되길 바란다."고 말을 맺었다.

◇ 설 선물 배달에 관한 진실

▶하루 40건 배달한다?

6일 홍준표 씨의 하루 배달 건수는 40건을 넘었다. 그 중 선물 배달은 16건. "아직까지는 고객들이 직접 산 물건을 댁까지 배달해 드리는 일이 많지만 이번 주 후반부터는 40건 모두가 설 선물 배달이 될 겁니다."

오전 9시30분에 출근,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오전 배달'을 마친 홍 씨는 백화점으로 다시 돌아와 '오후 배달'을 준비한다. "비결요? 배달할 지역을 눈여겨 살펴 동선(動線)을 잘짜야 짧은 시간에 많은 물건을 배달할 수 있지요."

▶'선물 거절' 있다?

대구시 남구 대명동의 한 주택에 배달을 나간 홍 씨. 선물을 되갖고 왔다. "미리 전화를 드렸더니 50대로 보이는 남성 분이 누가 선물을 보냈느냐고 묻더군요. 이름을 알려드렸더니 선물을 받기가 곤란하다고 말씀하셨어요." 거래처로부터 온 선물이 부담스러워 받지 않겠다고 한 것 같다는 게 홍씨의 짐작이다. 홍 씨는 명절마다 3, 4건의 선물거절을 경험한다. "90년대에는 선물을 받지 않겠다고 하는 분들이 '전혀' 없었습니다. 몇 년 전 공직자들이 '선물 안주고 안받기 운동'을 한 이후부터 거부하는 분들이 드문드문 있는 편이지요."

▶지역별 선물편중 심하다?

홍 씨가 선물을 배달하는 지역은 대구시 수성구가 압도적으로 많다. 선물 10개 중 4개꼴로 수성구로 간다. 그 다음으로는 달서구가 차지하고 있다. 동아쇼핑 역시 명절 선물 배달이 한창 몰릴 때면 수성구에 트럭을 2, 3대 투입하는 반면 다른 구·군은 고작 1대에 불과할 정도다.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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