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이승욱 作 꿈이 없는 빈 집에는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꿈이 없는 빈 집에는

비스켓 하나라도 바스락거리면

너무 외롭다. 너무 황홀한 꿈이 비스켓 속에

타기 때문. 바스락거리는 비닐껍질을 까고

가는 철삿줄 같은 내 아이의 손이 발라내는 비스켓

어찌나 아득하게 소란한 그 소리를

우리의 귀는 잠결에서도 흘려버릴 수가 없다.

어쩌면 우리의 손이 더 우그러져 비스켓 공장을 만든다면

이 세상이 다 소란할 비스켓 공장을 만든다면

아내와 나는 이렇게 어지러운 외로움에

걸레조각 같은 적막으로 몸을 닦지 않아도 될 것이다.

장미꽃이 핀 집에 장미는 더욱 아름답고

우그러진 철삿줄은 우그러져서 더욱 아름다울 것이다.

그렇지만 오래오래, 꿈이 없는 빈 집에는

비스켓 하나라도 바스락거리면

너무 황홀한 꿈이, 거기 불탄다.

그럴 때가 있지. 창턱에 올려놓은 제라늄 화분의 붉은 색이 갑자기 낯설어지고, 바람에 흔들리는 부엌의 망사 커튼이 서늘하게 가슴을 치는 순간이. 부족한 것 없는 안온한 일상이 문득 의심스러워 돌아보면 꿈을 잃어버린 초라한 얼굴이 거울 속에서 울고 있다. 잃어버렸기 때문에 꿈은 더욱 황홀한가. 날개를 잃어버린 타조처럼 뒤뚱뒤뚱 땅 위를 걸어보지만 이제는 안다. 나이 서른을 넘어서면 새장 문을 열어줘도 날아갈 수 없는 새가 되어버린다는 걸. 꿈이 사라진 집은 너무 고요하기만 하고…. 하긴 30대의 젊은 부부만 그러하랴. 아이들 공부하러 객지에 다 나가고 늙지도 젊지도 않은 부부가 하루 종일 눈으로만 말하는 적막한 집에는 개미들 발톱 깎는 소리까지 다 들린다는 말씀. 이럴 때 '비스켓' 발라내는 바스락거리는 소리는 차라리 천둥소리….

장옥관(시인)

최신 기사

07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민의힘 내부에서 장동혁 대표의 리더십에 대한 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대구경북 지역 의원들은 장 대표를 중심으로 결속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신세계, 현대, 롯데 등 유통 3사가 대구경북 지역에 대형 아울렛 매장을 잇따라 개장할 예정으로, 롯데쇼핑의 '타임빌라스 수성점'이 2027년,...
대구 지역 대학들이 정부의 국가장학금 Ⅱ유형 폐지에 따라 등록금 인상을 검토하고 있으며, 장기간 등록금 동결로 인한 재정 부담이 심각한 상황이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