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어서오이소! 2007 경북 방문의 해] ⑤군위·영천

돌할매, 제 기도 들으셨죠!

쏜살같이 시간이 흐른다. 새해가 밝은 지 한 달하고도 2주가 지났다. 이쯤되면 지난 연말 연초에 세웠던 계획이나 다짐들이 조금씩 느슨해지기 십상이다. 마음을 다잡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 또 한번의 기회가 있다. 진정한 정해(丁亥)년이 시작되는 설 명절을 전후한 소원기행이 그것이다. 사는 게 바빠 핑계대며 한해의 시작부터 막연히 달려온 사람들의 동참도 괜찮을 것 같다.

5번 국도에서 나와 919번 지방도 외길을 따라 부계삼거리서 오른쪽으로 빠져 석굴암을 향한다. 마른가지를 드러낸 느티나무들이 햇살을 받아 반짝인다. 포근한 겨울날씨다.

차를 주차장에 세워두고 줄지어진 사하촌 식당을 따라 걷는다. 잠시 걸었을까, 절집과 사하촌을 나누는 경계인 다리를 건너면 오른쪽에 산을 벽면처럼 막은 채 서있는 커다란 절벽을 마주친다.

이 절벽 가운데 움푹 패인 굴속에 부처님이 계시다니. 바로 제2석굴암이라고 부르는 군위 삼존석불이다. 처음 온 사람들은 생각지도 못한 이국적인 풍광에 와! 하는 탄성을 터뜨린다. 이런 곳에 어찌 부처님을 모셨을까? 절로 두 손을 모은다. 합장을 하며 눈을 감는다. 편안한 마음이 되면서 저마다 마음속 기원을 한다.

천년세월을 견뎌낸 부처님의 미소를 좀 더 가까이서 보고 싶다는 원력이 닿아서일까. 절벽 아래 계단서부터 사람들의 출입을 막아 놓았지만, 이날 법등 주지스님이 멀리서 온 서울손님을 위해 친견을 허락했다. 벌써 기도가 통하다니. 이방인들의 입가에도 연한 웃음이 번졌다.

절에서 나와 2㎞쯤 가면 한밤마을이 나온다. 문득 눈앞에서 만나는 소나무 숲. 나무는 용비늘마냥 굵게 조각난 껍질을 달고 부드럽게 비틀어져 지나는 사람들 발길을 붙잡는다. 길에는 대율(大栗)리라고 새긴 표석이 서 있다. 그 뒤 마을엔 나트막하게 솟은 돌담이 고샅을 따라 꾸불꾸불 이어진다. 담 넘어 산수유 가지도 드리워져 새봄 노란 꽃을 피워낼 채비를 한다. 계속 걷고 싶은, 부드러운 길이다.

일행은 공예체험장으로 향했다. 지난 1996년 폐교된 고로면 화수분교 자리다. 학교종이 매달린 70년대풍의 전형적인 시골학교 모습. 6년 전에 이곳에 정착한 주인 이재준 씨가 검정고무신을 신은 채 반긴다.

이곳에서 일행은 흙판에다 각자 마음에 둔 글귀를 새겼다. 장작난로 옆에서 조각칼 움직임이 서투르지만 모두들 글씨를 따라 정성스럽다. 새해 곱게 감춰둔 바람이 눈으로 형상화되는 순간이다. 건강, 사랑, 겸손, 늘 처음처럼, 행복하소서…. 간절하게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소망을 손에 쥔 표정이 모두 평화스럽다.

다다익선이라고 했다. 소원성취 기도도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게 아닐까?

내친 김에 돌할매의 영험을 빌어보기로 한다. 군위를 떠나 영천으로 방향을 잡았다. 운세를 점치는 신비의 돌이 있다는 영천시 북안면 관리. 12가구가 모여 사는 작은 마을이지만 입구부터 치성객들 차량이 꼬리를 문다. 돌할매가 자리한 누각 옆으로 차례를 기다리는 줄이 이미 길다. 할매가 내 기도를 들어줄까? 노소 모두 상기된 표정이다.

"아기를 갖게 해주세요." 30대 중반의 부부는 돌할매가 들리지 않자 함박웃음을 지으며 부둥켜안고 기뻐했다. 경기도 용인에서 '딸이 빨리 좋은 곳으로 시집가게 해달라.'고 빌러왔다는 어머니는 돌이 번쩍 들리자 계면쩍어하다가 함께 온 딸에게도 돌을 들 것을 권유했는데, 딸이 돌을 잡고도 꿈쩍하지 못하자 어머니는 금세 밝은 표정. 그러나 "엄마, 나 그 소원 안 빌었어." 딸의 한마디에 주변에는 웃음이 퍼졌다. 초등학교 다니는 한 꼬마는 "집에서 강아지 키우게 해주세요."라며 깜찍한 소원을 빌기도.

돌할매의 영험을 믿든 안믿든, 사람들은 바라는 바를 들어주지 않아도 실망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 정성이 부족하다거나 너무 큰 소원을 욕심냈다고 생각한다. 복이라는 게 이렇게 열린 마음이어야 쉽게 들어갈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돌아오는 길 저만치 하늘에 엷은 노을이 걸려 있다.

이석수기자 sslee@msnet.co.kr

군위·이희대기자 hdlee@msnet.co.kr

영천·이채수기자 csl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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