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다시보는 국채보상운동 100주년] ⑤.끝-남은 흔적들

국채보상운동의 발상지 대구에는 북후정, 광문사, 진골목,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등 당시의 흔적과 이를 기리는 상징물들이 곳곳에 있다.

1907년 2월 21일 첫 집회로 기록되고 있는 대구군민대회가 열린 곳은 북후정으로 현재 대구시민회관(중구 태평로2가)이 자리잡고 있다. 이 곳에는 현재 온 백성이 엽전을 모으는 모습을 형상화한 국채보상운동기념비가 서 있다.

거사 당일 북후정에는 어른들과 아이들까지 포함해 2천여 명의 대구시민들이 집결, 시위를 벌였고 경상북도 경무부는 무허가 집회로 규정, 해산을 종용했던 것으로 대한자강회월보 9호에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대구군민운동을 주도한 '대구국채담보회'는 3일 후인 2월 24일에도 장날을 맞아 북후정에서 대대적인 민중대회를 개최했다.

광문사(중구 서야동)는 1907년 1월 29일 서상돈 등이 국채보상운동을 발의한 장소다. 광문사 부사장이었던 서상돈은 이곳에서 김광제(광문사 사장) 등 10여 명과 모여 "국채 1천300만 원을 갚아 국권회복을 도모하자"는 취지를 발의했다. 현재 이곳에는 사찰 대성사가 자리잡고 있다.

진골목(중구 중앙로 농협중앙지점~약전골목 입구)은 1907년 2월 23일 여성 국채보상운동이 시작된 곳이다. 당시 대구 동상면 남일동이었던 이곳에서 달성 서씨 명문 출신인 서병규 영감의 처 등 일곱 부인은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를 결성, '경고 아 부인 동포라(나라 위하는 마음과 백성 된 도리에 어찌 남녀가 다르리오. 부인 동포들은 다소를 불구하고 혈심 의연하와 국채를 청장하자.)'는 격문을 발표하고 여성 운동을 이끌었다.

대구시는 100주년을 기념, 12일 광문사 자리인 대성사와 진골목에 국채보상운동을 상징하는 표석을 설치했다.

대구 한복판인 중구 동인동에는 대구가 이 운동의 발상지임을 알리는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이 있다. 이 공원은 대구시민들과 대구를 찾은 외지인들에게 국채보상운동을 제대로 알리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기념공원 내에는 국채보상운동 당시 부녀자들이 이 운동에 동참한 것을 기념하는 '여성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기념공원 내에는 또 오는 21일 100주년을 기념, 서상돈과 김광제의 흉상이 세워질 예정이다. 기념공원 인근에는 '국채보상운동 기념관'건립이 추진되고 있다.

이 밖에 기념공원 앞의 대구 동서를 가로지르는 도로에는 국채보상로란 이름이 지어졌다. 국채보상로는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했던 대구의 힘찬 기운을 담고 있다.

김교성기자 kg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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