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교단에서)졸업을 맞은 C군에게

C군, 너의 졸업이다. 이제, 보다 먼 길을 떠나야 할 시간이다.

끝을 알 수 없는 먼 길을 떠나야 하는 너는, 이제 차분히 '바람의 구두'와 '구름의 빵'을 준비하라. 그리하여 그 무엇에도 걸림없이 자유로운 바람을 네 정신의 구두로 삼고, 한없이 높은 곳에서 고요히 머무는 구름을 네 이상(理想)의 양식(糧食)으로 삼으라. 그리고 기꺼이 버려라, 스무 해 동안 끊임없는 반복으로 익숙해진 네 앵무의 혀를. 또한, 과감히 벗어나라, 네 정신을 가두어오던 달콤한 편견(Doxa)의 새장을. 그리고 주저치 말고 떠나라, 밤마다 네 사춘기의 영혼을 향해 손짓해오던 자유와 이상의 드넓은 처녀지로.

'바람의 구두'를 신고, '구름의 빵'을 뜯어먹으며, 너는 이제 미성년(未成年)의 강을 건너라. 그 강을 건너는 순간, 너의 이름은 '홀로된 자'이리니, 더 이상 부모가 드리우는 나무그늘에서 네 몸을 쉬려들거나, 뭇 어른들이 파놓은 우물에서 네 목마름을 달래려 들지 말아라. 오랫동안 미성년의 목책(木柵) 안에서 보호를 받으며 자라온 너에게, 그 '홀로됨'은 불안하기도 할 것이나, 너는 두려워마라. 저 높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붉은머리 독수리에게도 천길 벼랑 아래의 텅 빈 공중을 향해 몸을 던져 날개짓을 배워야만 했던 '홀로된 두려움'의 한 시절이 있었으리니. 그리하여 미성년의 강을 건너온 네 앞에 펼쳐진 아득한 자유의 벌판에서, 기꺼이 처음으로 시작하며 땀흘려 네 학문과 사고와 이상의 씨앗을 뿌려라.

이제 '홀로된 자'의 이름을 가진 너는, 또한 너와 같이 '홀로된' 타인들을 아끼고 사랑하라. 무릇 '인간(人間)'이란 수많은 홀로된 자(人)들의 '사이(間)에서 살아가는' 자들이어서, 인간된 자들의 삶의 고통이란 항상 '사람 사이의 단절과 외로움'에서 시작되는 것. 너는, 그리하여 그 외로운 자들 사이에서 먼저 마음을 열고, 손내밀어 마주잡기를 망설이지 말아라. 저 유대족의 위대한 경전 는 말한다, '세상을 투명하게 비추는 유리에 수은(水銀)을 칠하면 거울이 되어, 세상은 지워지고 내 모습만을 비춘다.' 이와 같아서 우리는 때때로 '세상'을 버리고 '나'만을 구하려는 어리석음에 기꺼이 몸을 맡긴다. 그 거울 속의 '나'는, 그러나 얼마나 허망하기만 한가? 네가 정녕 온 세상을 갖기를 원한다면, 거울 뒷면의 '이기적인' 수은을 깨끗이 지우고 그 유리의 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자세만이 필요할 것이다.

그럴 때 너의 열린 눈에 보일 것이다, 세상의 아름다움에 가려진 네 이웃들의 고통들이. 그때 너는 그 고통으로부터 고개돌려서는 안된다. 사람 사이를 살아가는 자들은 서로 간의 벌어진 틈서리를 손에 손을 마주잡고 메꾸어갈 때에만 '인간'으로서 완성될 수 있으리니. 네가 어디를 가든, 너보다 더 외로운 자와, 너보다 더 상처입은 자와, 너보다 더 그늘지워진 자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손을 번쩍 들어주어라. 그럴 때 비로소 보일 것이다,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에서 사과 한 알을 나누어가질 줄 아는' 사람들의 모습과 그들이 손 맞잡은 꽃보다 아름다운 한 세상의 모습이. 그 들판에서 너는 세상의 낮은 사람들과 손에 손을 잡고, 취(醉)하고, 노래하고, 춤추어라! 생(生)의 잔치를 즐겨라.

C군, 졸업이다. 이제 네가 걸어가야 할 길은 멀고멀다, 하지만 너는 자유의 구두를 신고 이상의 빵을 씹으라. 세상의 낮은 곳으로 가서, 생의 잔치를 준비하라. 이제, 교문을 떠나라!

김상묵(포항제철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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