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菴(시암)의 봄
정완영
내가 사는 艸艸詩菴(초초시암)은 감나무가 일곱 그루
여릿여릿 피는 속잎이 청이 속눈물이라면
햇살은 공양미 삼백 석 지천으로 쏟아진다.
옷고름 풀어 논 강물 열두 대문 열고 선 산
세월은 뺑덕어미라 날 속이고 달아나고
심봉사 지팡이 더듬듯 더듬더듬 봄이 또 온다.
오는 봄 앞에선 누구도 거짓말을 못합니다. 기다 아니다, 군말 할 것도 없습니다. 이제 곧 싹이 돋고 꽃망울이 터지면 다 들키고 말 텐데요 뭘. 엘니뇨 탓이라고는 하나, 올 봄은 유난히 잰 걸음입니다. 그런 봄한테 쫓겨가는 겨울의 표정이 어쩐지 좀은 민망하고 감궂지요.
봄 앞에 시인이 사는 집과 여염집이 무에 다르겠습니까. 그 집에 감나무가 일곱 그루라니 그만큼 넉넉한 시정을 누릴 밖에요. 시인이 사는 곳은 어디든 詩菴(시암)이 될 수 있지만, 거기에 오는 봄이라고 다 같은 봄은 아닙니다. 맞아 가꾸고, 느껴 베풀기에 따라 봄의 향기는 사뭇 달라지니까요. 봄 앞에서 시인은 할말이 무척 많은 듯합니다. 하고많은 그 말들을 쟁이는 대신에 심청전의 몇 대목을 슬쩍 옮겨다 놓는데요. 그 솜씨가 참 기막히게 느꺼워서 이런 것이 바로 活法(활법)이려니 싶습니다.
공양미 삼백 석에 팔려가는 청이 속눈물, 날 속이고 달아나는 뺑덕어미, 더듬더듬 더듬는 심봉사의 지팡이가 다 그렇습니다. 어디 한 군데 어색하거나 모난 데도 없이 한량없는 속엣말들을 풀어내지요. 그것이 여릿여릿 피는 감나무 속잎이면 어떻고, 더듬더듬 오는 봄빛이면 또 어떻습니까. 낡을 대로 낡은 이야기도 이렇듯 쓰기 나름으로는 얼마든지 새로운 시적 변용이 가능합니다.
박기섭(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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