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목요 시조산책-정완영 作 '詩菴(시암)의 봄'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詩菴(시암)의 봄

정완영

내가 사는 艸艸詩菴(초초시암)은 감나무가 일곱 그루

여릿여릿 피는 속잎이 청이 속눈물이라면

햇살은 공양미 삼백 석 지천으로 쏟아진다.

옷고름 풀어 논 강물 열두 대문 열고 선 산

세월은 뺑덕어미라 날 속이고 달아나고

심봉사 지팡이 더듬듯 더듬더듬 봄이 또 온다.

오는 봄 앞에선 누구도 거짓말을 못합니다. 기다 아니다, 군말 할 것도 없습니다. 이제 곧 싹이 돋고 꽃망울이 터지면 다 들키고 말 텐데요 뭘. 엘니뇨 탓이라고는 하나, 올 봄은 유난히 잰 걸음입니다. 그런 봄한테 쫓겨가는 겨울의 표정이 어쩐지 좀은 민망하고 감궂지요.

봄 앞에 시인이 사는 집과 여염집이 무에 다르겠습니까. 그 집에 감나무가 일곱 그루라니 그만큼 넉넉한 시정을 누릴 밖에요. 시인이 사는 곳은 어디든 詩菴(시암)이 될 수 있지만, 거기에 오는 봄이라고 다 같은 봄은 아닙니다. 맞아 가꾸고, 느껴 베풀기에 따라 봄의 향기는 사뭇 달라지니까요. 봄 앞에서 시인은 할말이 무척 많은 듯합니다. 하고많은 그 말들을 쟁이는 대신에 심청전의 몇 대목을 슬쩍 옮겨다 놓는데요. 그 솜씨가 참 기막히게 느꺼워서 이런 것이 바로 活法(활법)이려니 싶습니다.

공양미 삼백 석에 팔려가는 청이 속눈물, 날 속이고 달아나는 뺑덕어미, 더듬더듬 더듬는 심봉사의 지팡이가 다 그렇습니다. 어디 한 군데 어색하거나 모난 데도 없이 한량없는 속엣말들을 풀어내지요. 그것이 여릿여릿 피는 감나무 속잎이면 어떻고, 더듬더듬 오는 봄빛이면 또 어떻습니까. 낡을 대로 낡은 이야기도 이렇듯 쓰기 나름으로는 얼마든지 새로운 시적 변용이 가능합니다.

박기섭(시조시인)

최신 기사

mWiz
18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이동재 매일신문 객원편집위원이 진행한 방송에서 민주당이 사법 3법 강행을 추진하며 삼권분립을 위협하고 있다고 비판하였고, 미국 하원에서 쿠팡...
삼성자산운용의 핵심 펀드매니저 마승현이 DS자산운용으로 이직할 예정이며, 이는 삼성자산운용의 인력 이탈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에스팀은 ...
가수 정동원이 23일 해병대에 입대하며, 소속사 쇼플레이 엔터테인먼트는 그의 건강한 군 복무를 응원하고 있다. 경남 함양에서 발생한 대형 산...
브리핑 데이터를 준비중입니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