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건 고단한 일이다. 늘 서둘러야 하는 현실 속엔 여유가 자리 잡을 손바닥만한 공간조차 아쉽다. 사람들은 일탈과 자유를 꿈꾼다. 이런 갈망을 안고 가상세계(Cyber Space)에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 세컨드라이프, 다른 삶을 꿈꾼다
대표적인 가상세계 사이트가 '세컨드라이프'(www.secondlife.com). 미국의 IT기업인 린든 랩이 2003년에 만든 가상현실 사이트이다. 인터넷에 기반을 둔 3D(3차원) 가상 현실 공간이다. 세컨드라이프에서 일어나는 풍경을 살펴보자.
아침에 일어난 P씨는 PC부터 켠다. 모니터에는 사이버 속의 또 다른 나 '아바타'(Avatar·분신 캐릭터)가 뜬다.
실제 세계에서 무주택자인 그이지만 가상세계에서는 저택을 갖고 있다. 가상 우편함을 열어 e메일과 각종 뉴스·소식을 확인한 뒤 집을 나선다. 거리를 지나 가상세계의 쇼핑센터에 들른다. 마음에 드는 옷을 사서 사이버 머니로 결제하면, 옷은 가상집의 사물함에 배달된다. 광장에 가서 다른 아바타와 만나 대화를 나눈다. 문득 오늘은 나이트클럽에 가고 싶어졌다. 마음에 맞는 아바타들과 삼삼오오 가상세계의 나이트클럽에서 한바탕 신나게 춤을 춘다.
세컨드라이프에서 아바타의 모습은 사용자가 직접 만드는데 자신과 비슷해도 되고 아니어도 그만이다. 회원 가입은 무료지만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고 싶다면 가상의 토지를 사야 한다.
아직까지는 세컨드라이프에서는 애니메이션 수준의 3D 그래픽 환경이 구현될 뿐이고 그리 대단한 모험이 벌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가상세계에서 나 아닌 또 다른 누군가가 되는 경험을 선사하기에 사람들은 세컨드라이프에 열광하고 있다.
◆ 상상하는 것이 현실이 된다
2003년 베타버전이 첫선을 보인 뒤 세컨드라이프의 주민이 100만 명이 되기까지는 3년이 걸렸다. 그러나 주민이 200만으로 늘어나는 데는 두 달밖에 걸리지 않았고 3월 말 현재 그 수가 500만을 돌파했다.
주민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세컨드라이프와 현실 세계가 관심·이익을 공유하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세컨드라이프에서 통용되는 화폐는 '린든 달러'다. 온라인게임에서의 사이버머니처럼 린든달러는 미국 화폐와 교환되고 있다. 3월 말 현재 미화 1달러에 약 270린든달러가 환전되고 있다. 경제 분석 전문업체인 '메타스탯'은 올해 세컨드라이프 주민의 국내총생산(GDP)이 지난해에 비해 9배 늘어난 미화 5억, 6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아프리카 국가 중 하나인 라이베리아의 GDP(5억 4천만 달러)와 맞먹는 수치다.
세계적인 음반회사인 소니BMG는 세컨드라이프 안의 섬을 통째로 사서 '소니뮤직 미디어 아일랜드'를 조성했다. IBM, 통신사 로이터 등 세계 유수의 기업·언론들이 세컨드라이프 안에 지사를 냈으며 스페인 정부는 가상 대사관을 설립했다.
가상세계에서의 부동산 투기도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말 안시 청(Anshe Chung)이라고 자칭한 주민은 세컨드라이프 최초의 백만 장자가 됐다고 선언해 화제가 됐다. 그는 처음에 미화 9.95달러를 투자해 세컨드라이프 안의 토지를 구입한 뒤 정비하고 대출·판매해 미화 100만 달러 정도를 벌었다고 주장했다.
현재 세컨드라이프 안에는 코리안타운(사진)이 있고 최근에는 한국을 상징하는 문화재 '경회루'도 생겼다. 국내1호 세컨드라이프 디벨로퍼인 애시드크레비즈는 내달 초 한국인 사용자를 위한 아일랜드 오픈을 준비하고 있으며 첫 단계로 경회루를 지었다고 최근 밝혔다. 애시드크레비즈 측은 이 섬에 근정전 등을 지속적으로 건설해 경복궁 전체를 재현할 계획이다.
린든 랩은 최근 한국어판 세컨드라이프를 준비하는 등 한국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한글 안내 웹페이지(www.secondlife/world/kr)와 베타 한글 뷰어를 제공하고 있다.
◆ 게임이 만드는 가상세계
가상세계에 세컨드라이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가전회사인 소니도 최근 자사의 최신 신형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3'로 인터넷에 접속해 가상공간에서 다른 이용자들과 교류하는 온라인 3D 가상세계 '홈(Home)'을 올가을에 선보인다.
플레이어는 중앙 로비라고 불리는 공공 장소에서 다른 이용자와 만나 텍스트나 오디오·비디오 채팅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의류·액세서리 등을 교환할 수 있다. 무료인 가상 아파트를 개인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으며 다른 플레이어와 볼링·당구를 하거나 고전게임을 함께 즐길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접속해 즐기는 온라인 게임에서도 가상세계가 구현돼 있다. 국내에서는 '리니지' 등 다중 온라인게임(MMOG)이 가상세계의 원조 격이다. 국내 온라인 게임은 게임 자체를 넘어서 현실과 연결돼 각종 사회·경제 현상을 낳고 있다. 국내 온라인 게임의 아이템 현금 거래 규모는 약 1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의 미디어 시장 조사기관 스크린 다이제스트는 온라인 게임 속 가상세계의 시장가치가 현재 10억 달러 이상이며 2011년까지 15억 달러로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 가상세계의 이면
컴퓨터 기술의 발전으로 가상세계가 구현하는 그래픽이 현실과 닮아가면서 가상세계 속 아바타들의 형태 또한 현실세계 사람들을 닮아가고 있다. 세컨드라이프에서도 돈과 섹스, 범죄가 생겨나고 있다. 창녀와 마약상, 어린이와 성인 아바타가 성관계를 맺는 방까지 등장했다. 가상의 한 테러조직이 "아바타의 인권을 보장하라."며 가상의 상점에 폭탄을 던지는 소동도 발생했다.
세상의 어디에나 어두운 구석이 있고 구린 곳이 있다. 가상세계 역시 예외일 수 없는가 보다.
김해용기자 kimhy@msnet.co.kr
◇ 키워드
아바타(Avatar)
분신(分身)·화신(化身)을 뜻하는 말. 사이버 공간에서 사용자의 역할을 대신하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가리킨다. 땅으로 내려온 신의 화신이라는 산스크리트어(고대 인도어) '아바타라(avataara)'에서 유래됐다.
플레이스테이션3(PS3)
일본의 가전회사인 소니가 최근 출시한 가정용게임기. 고화질(HD)TV 수준의 게임 화면과 5.1채널의 음향을 구현한다.
다중 온라인 게임(MMOG)
인터넷에 여러 사람이 접속해 함께 즐기는 게임을 말한다. Massively Multiplayer Online Game의 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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