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비 내용 제출 동의서 받아, 말아?"
2일 대구 동구의 한 산부인과에 호르몬 이상으로 치료를 받으러 간 K씨(26·여)는 진료 접수와 함께 동의서 한 장을 건네받았다. 총 5개 문항으로 된 동의서엔 연말 정산시 진료비 내용을 국세청에 제출해 개인 진료 기록이 공개되는 것에 대해 동의 여부를 묻고 있었다. 특히 진료 내역서가 외부로 유출돼 생기는 문제에 대해 병원 측에서는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다는 문구도 적혀 있었다. K씨는 "이런 동의서는 처음 보는데 동의 여부를 물어봐 줘 고맙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 동의서가 혹시 악용되는 것은 아닐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같은 날 대구 중구의 한 성형외과. 이곳에선 환자 동의 없이 진료내용을 국세청에 제출하고 있었다. 의원 관계자는 "국세청이 일괄 제출토록 한 부분에 대해 개인 의원이 가타부타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며 "또 소득공제는 필요한 사람이 원해서 진료비 내용을 청구하는 것인데 이에 대해서까지 동의서를 만들 필요는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병·의원들이 진료비 내용 제출 동의서를 두고 딜레마에 빠졌다. 정부가 지난해 말부터 의료급여나 비급여 대상에 관계없이 진료 내용을 건강보험공단에 제출하도록 하면서 환자들의 동의를 구하는 문제를 두고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 실제 동의서를 받자니 환자들이 동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소득 공개를 하지 않으려 한다는 오해를 살 수 있고, 일괄 제출하자니 개인의 병력 등 정보를 동의없이 외부로 유출했다는 이유로 소송 등에 휘말릴 우려가 있어 병·의원마다 제각각 대안 마련을 두고 고심하고 있다.
동의 문제를 두고 해석이 분분하기는 국세청 및 의사회 등 관련 기관, 단체도 마찬가지. 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국세청에 진료비 내용을 제출하는 것은 개인정보 유출로 볼 수 없다."며 "오히려 병원들이 동의서를 작성하게 해 소득을 숨기려는 의도가 짙다."는 반응을 보였다. 반면 의사회는 "동의서를 통해 최소한의 개인정보 유출을 막고 사생활을 보호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임규옥 변호사는 "병원의 소득 투명성과 소득공제 증명서 발급의 편의도 중요하지만 가장 우선시돼야 할 것은 개인의 진료내용 보호"라며 "의사회나 국세청 모두 환자의 사생활 보호에 가장 큰 중점을 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동의서를 받을 경우엔 법적으로 보호를 받을 수 있지만 동의하지 않은 진료 내용을 유출할 경우 인격권 침해로 법적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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