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잘 아는 병원 없습니까"

"혹시 잘 아는 병원이 없습니까?"

단골로 찾아오던 환자분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거나, 혹은 멀리 있는 친척들에게 곧잘 듣는 질문이자 부탁이다. 10여 년 정들었던 동네를 떠나 지금 이곳으로 병원을 옮길 때에도 숱하게 들었던 이야기이기도 하다. 물론 그 중에는 '잘 안다.'는 것이 꼭 의학적인 '명의'만이 아니라, 인간적으로 알고서 살갑게 챙겨주고 믿을 수 있는 의사를 의미한다는 것도 너끈히 짐작할 수 있다. '한 다리 건너 천리'라고, 꼭 병원뿐만이 아니라 하다 못해 동사무소에 가서 서류 한 장을 떼더라도 내가 아는 사람, 혹은 한 다리 건너서라도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으면 마음이 거뜬해지고 든든해지는 것이 인지상정이 아니던가? 그런데 '한 다리 건너기'가 당최 만만치가 않다는데, 우리들의 불안은 비롯되고 끝 모를 조바심이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지금의 동네로 병원을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이다. 예전 병원은 집 근처라서 웬만하면 차를 타는 대신 운동 삼아 걸어서 출퇴근을 했지만, 이곳은 아예 엄두가 나지 않아 줄곧 승용차 신세를 져야만 한다. 워낙 차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데다 주변에서 카센터에 대한 온갖 흉흉한(?) 경험담을 귀동냥한 처지라 마침 토박이로 짐작되는 어느 분에게 은근한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혹시 이 마을 카센터 중에서 어디 잘하는 데 없습니까?" 라고 말이다. "와예, 다 잘하지예. 그라고 믿어주는 만큼 더 잘해 줄 낍미더." 바로 나의 우물쭈물거리는 질문에 그분이 시원스럽게 일러준 대답이었다. 참 순간적으로 나의 영악스러운 속내가 들킨 것만 같아서 부끄러웠고, 자기 동네에 대한 그분의 믿음과 자부심이 두고두고 부러웠다. 그분 말씀대로 병원에서 가장 가까운 곳을 정해서 지금껏 차를 맡기고 있다. 차에 대해서 까막눈이라 아예 믿고서 맡기겠노라고 몇 번의 다짐을 했고, 그 정비소에서는 작은 부속 하나를 갈더라도 일일이 사전에 설명을 하고, 또 사후에 꼭 확인까지 시켜주었다.

물론 이제는 안다. 세상에 이곳보다 더 훌륭한 정비소도 많고, 차에 대해서 더 잘 아는 우수한 정비사야 부지기수라는 것을. 그러나 바로, 우리 동네 카센터 아저씨보다 내 차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챙겨줄 수 있는 정비사는 없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렇다. 당연히 나보다도 내 차에 대해서 더 환히 꿰고 있는 주치의이자, 필요하면 어디를 어떻게 찾아가라고 길라잡이까지 자청해주는 같은 동네 이웃을 두어 난 참 편안하다.

때로 치료가 처음 생각처럼 잘 되지 않을 때, 특히 전폭적인 신뢰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환자나 가족들의 눈길 앞에서 나는 당연히 난감해지고 다급해진다. 왜냐하면 믿음이라는 한 다리를 이미 건너온 바로 내 이웃의 아픔이자, 스스로의 안타까움이기 때문이다.

송광익(늘푸른소아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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