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사먼지를 뒤집어쓴 옛집은 한마디로 폐허로 방치되어 있다.
이상화 시인의 고택(대구시 중구 계산동). 고층 아파트 공사장에 가려 그늘진 상화의 고택은 입구부터 지독한 악취가 방문객의 발걸음을 당혹스럽게 한다. 집 안을 들여다보니 더 기가 막힌다. 담장은 허물어지고, 봉창문도 뜯겨나가고 없다. 구들장은 내려앉고, 처마 밑은 부스럼처럼 헐었다. 비바람이 들이쳐 얼룩덜룩한 벽은 군데군데 나무살까지 드러나 있다.
봄의 한가운데서도 싹을 틔우지 못한 나무가 쓰레기터 같은 마당에 쓰러진 채 서있는 모습은 허울좋은 '문화예술도시 대구'의 현주소를 웅변하고 있다. 누가 이곳을 대구정신의 구심점이었던 상화 시인의 고택이라 할 수 있을까.
오늘은 대구가 낳은 민족시인 이상화(1901~1943)의 106주년 탄생일.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항일정신을 대변했던 그의 생가는 그 흔한 안내판이나 표지판 하나 없이 고층 주상복합아파트 공사장 아래서 그늘진 봄을 맞고 있다.
지난 휴일 서울의 문화유산연대(코리안 헤리티지) 회원 20여 명이 상화 고택을 찾았다. 허물어져 가는 고택을 둘러본 이들은 대구시와 시민들의 무관심에 혀를 내둘렀다. 한 회원은 "'독립운동 하면 이런 꼴 난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김란기 문화유산연대 집행위원장은 "무리해서라도 근대건축물을 복원하려는 타 지자체와 너무 차이가 난다."며 "상화 시인의 위대한 정신이 훼손되는 것 같아 너무 가슴 아프다."고 했다.
이 집은 이상화가 2년여 생활하다 생을 마감한 곳이다. 대구 서문로에서 태어나 네 차례 이사했지만, 그가 살았던 다른 집은 모두 개발로 헐렸다. 이 집도 한때 대구시의 도시계획에 의해 도로로 편입돼 헐릴 위기에 몰렸지만, 지난 1998년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반발로 겨우 보존됐다.
지난 2002년에는 상화고택보존운동본부가 100만 시민 서명운동을 펼쳐 8천500만 원을 모금해 대구시에 전달했고, 2004년에는 주상복합건물을 짓던 군인공제회가 상화 고택을 사들여 대구시에 기부하면서 고택 복원사업이 명맥이나 유지하게 되었다.
대구시는 다음달부터 복원공사를 시작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러나 문화유산연대는 5일 '민족시인 통곡한다. 냄새 진동하는 상화고택-피폐화된 문화유산, 대구 세계육상대회 치를 자격 있나'라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아무리 보수계획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방치하는 것은 독립운동가를 능멸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며 분개했다.
대구시는 지난해 9월 수리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그 이후 차일피일 미뤄왔고 그 사이 고택은 흉물스런 폐가로 변해갔다. 문무학 대구문인협회장은 "수리계획이 미리 잡혀있었지만 일찍 손대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정신과 전문의 권영재(61·대구의료원 제1정신과장) 씨는 "수리계획은 면피용일 뿐이다. 제대로 해보려는 대구시의 의지가 없어 보인다."며 "대구시뿐 아니라 시민의 무관심도 그렇고, 대구의 비문화적 구조의 총체적인 현주소"라고 말했다.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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