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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의 영화세상] 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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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란 무엇일까? 세상의 덧없음이 곧 지혜의 근원임을 말해주는 불교에서 '향기'란 보이지 않는 욕망을 상징하곤 한다. 덧없이 사라지는 찰나의 것, 온 몸의 감각을 들뜨게 할 만큼 매혹적이지만 결코 집착할 수 없는 무엇, 그것이 바로 향기인 셈이다. 그러나 한편 향기처럼 매력적인 유혹이 어디 있을까? 바쁜 출근 길 채 깨지 않은 아침을 상큼하게 뒤흔드는 향 내음들, 엘리베이터 안에 남은 체취들, 달콤한 과일 향기, 미각을 자극하는 음식 냄새들. 어두운 밤 교교히 방황하는 꽃내음들. 어쩌면 향기는 보이지 않기에 더욱 상상력을 자극하는 유혹일지도 모르겠다.

파크리크 쥐스킨트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 '향수'는 절대적 미에 대한 탐욕과 집착을 그린 드라마이다. 세상의 그 어떤 냄새라도 맡을 수 있고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그루누이, 그는 형편없는 출생과 환경에도 불구하고 그 천부적 재능을 통해 생존해 나가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그가 가진 재능은 한편 지독히 위험한 것이라 타인이 지닌 삶의 에너지를 위협하곤 한다. 그의 존재감이 타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뛰어난 감각을 가졌으나 그 감각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 지 모르는 주인공 그루누이는 애초부터 불행한 예술가라고 할 수 있다. 때로 재능은 축복이 아닌 저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향기와 향수, 체취와 온기의 관계에 대해서 무지한 채 그것을 채집 가능 한 대상으로 여기는 그루누이. 가질 수 없는 것과 가져서는 안 되는 것 사이의 경계를 오가는 그는 곧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절대적 미에 다가가고자 하는 예술가와 닮아 있다. 지독한 탐미주의자로서의 그루누이의 면모는 아름다운 처녀의 향기를 모아 완벽한 향기를 만들고자 하는 행위로 압축된다.

영화 '향수'는 향기라는 보이지 않는 감각을 시각적 체험으로 각색해내는 데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롤라 런'을 감독했던 톰 튀크베어의 감각적 편집과 촬영 덕분에 향기라는 후각이 시각적 전율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원작의 추악한 외모가 섬약한 눈동자를 지닌 그루누이로 각색된 것 역시 영화만의 매력을 살린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개구리'라는 뜻에 부합할만큼 원작 속의 그루누이는 추악함을 너머 혐오스럽다. 영화 속 그루누이의 선택, 즉 살인이 아름다움에 대한 지극한 노력으로 받아들여지는 것도 그루누이를 맡은 벤 위쇼의 영향이 크다.

결국 미친 사람들의 위장관 속으로 사라져버린 그루누이, 자신이 얻고자 했던 절대적 향수를 얻고 난 이후 세상에서 증발해버린 그루누이는 지독한 탐미주의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원하는 경지에 도달하고 사라져 버린다는 것, 그것이야 말로 모든 예술가들이 꿈꾸는 궁극의 소멸이기 때문이다. 어떤 점에서 향기 하나로 집단적 최면에 빠지고 그 광기가 살육으로 이어지는 카니발은 관객에게 낯설고 희한한 광란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 듯 싶다. 하지만 영화 '향수'의 매력은 그 낯선 카니발의 광란 속에 잠시 자신의 일상을 무장해제 하는 데 있을 듯 싶다. 법의 세계를 잊고 잠시나마 절대적 미의 쾌락에 빠질 수 있는 공간, 그곳이 바로 향기, 향수의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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