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툭하면 위치추적 요청…119 '허탕 출동' 골머리

올들어 207건 중 실제 긴급상황 3건뿐

지난달 28일 오후 8시 26분 대구 소방본부 119 재난종합상황실에 황모(37·여) 씨의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남편 김모 씨가 '납치됐다.'는 말만 남긴 채 연락이 두절됐다며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통해 소재지를 파악해 달라고 부탁했다. 소방본부 측은 위치추적 결과 김 씨가 대구 달서구 갈산동 한 아파트 인근에서 유천동으로 이동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달서소방서 구급대원 4명과 경찰관 3명을 급파해 1시간이나 인근 지역을 샅샅이 뒤졌지만 '남편과 통화가 됐으며 무사하다.'는 황 씨의 전화에 허탈하게 발길을 돌려야 했다.

앞서 26일 오후 3시 50분쯤에는 아버지가 유서를 써놓고 집을 나갔다는 강모(23·여) 씨의 구급요청이 들어왔다. 또다시 구급대원과 경찰이 출동, 달서구 두류동 일대를 1시간 가까이 수색했지만 강 씨의 아버지는 인근에서 아무 일 없다는 듯 볼일을 보고 있었다.

119상황실에 휴대전화 위치추적으로 사람을 찾아달라는 민원이 폭주하고 있지만 허위·오인 신고가 대부분인데다 추적 성공률이 낮아 소방당국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대구 소방본부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119상황실에 접수된 휴대전화 위치정보 파악 요청건수는 848건으로, 지난 2005년 50건에 비해 무려 17배나 늘었다. 이 같은 증가세는 올해도 계속돼 9일 현재 207건이나 접수됐다.

그러나 이를 통해 실제 구조로 이어진 경우는 극히 드물다. 지난 한 해 접수된 위치추적 요청 가운데 2%인 21건만이 산악구조나 자살추정, 의식혼미 등 긴급 상황인 것으로 나타났다. 절반에 가까운 330건은 위치 조회에 실패했고, 다른 기관 인계가 137건, 발견 실패 125건, 신고 취소 92건, 가족 발견 58건, 자체 귀가 36건 등의 순이었다. 올해도 전체 요청 건수 중 불과 3건만이 실제 긴급 상황이었고 나머지는 '허탕'.

이처럼 성공률이 낮은 것은 휴대전화 추적으로도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일부 GPS폰을 제외한 나머지 휴대전화는 가까운 기지국의 위치 정도만 알 수 있어 수색 범위가 반경 500m~1㎞로 넓다. 도심지의 경우 이 안에 있는 수십 개의 건물과 수천 명의 사람을 수색해야 하는 실정.

특히 단순가출이나 늦은 귀가, 부부싸움 뒤 외출 등 긴급한 상황이 아닌데도 위치 추적을 요청하는 사례도 적잖다. 이는 지난해 소방방재청이 자살 우려 신고를 긴급구조 요건에 포함시키면서 일반인들의 허위·오인 신고가 급증했기 때문. 대구소방본부 이충렬 상황실장은 "휴대전화 위치추적은 실제 화재 상황에 맞먹는 인력과 시간이 소모된다."며 "정작 화재나 각종 응급상황이 생겼을 때 출동할 인력이 부족해질 수 있는 만큼 무분별한 위치 추적 요청은 자제해야 한다."고 부탁했다.

한편 허위로 긴급구조 요청을 한 경우 최고 1천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실제로 지난달 28일 부산에서는 날치기당한 자기 손가방을 찾기 위해 소방서에 허위로 휴대전화 위치정보 추적을 요청한 김모(45·여) 씨가 100만 원의 과태료 처분을 받기도 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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