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모금 '홍수'…등록제 전환후 너도나도 손벌려

시민들 정체불명 단체 요구에 '황당'

회사원 김형식(33) 씨는 한 식당에서 술을 마시다가 미심쩍은 경험을 했다. 금발의 외국인 20대 여성이 태국,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지역의 어린이 교육을 위해 모금을 한다며 기부금을 요구했기 때문. 막무가내로 다가와 몇 줄 설명이 적힌 책자를 들이밀어 돈을 꺼내는 손님들도 적지 않았다.

모금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시간 뒤, 모 단체 회원이라고 소개한 30대 남성이 열쇠고리를 사라며 다가왔다. 그 남자는 김 씨가 어떤 단체인지, 허가받은 모금인지 등을 묻자 "대구시의 허가를 받았다."는 대답만 반복한 채 사라졌다. 김 씨는 "얼떨결에 1천 원을 내긴 했지만 외국인이 모금을 하는 것이나 어떤 단체인지 설명이 없어 의심스러웠다."고 했다.

최근 정부가 기부금품 모집 기준을 대폭 완화하면서 일부 시민단체들의 소규모 기부금품 모집이 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단체들은 모금 단체나 목적, 기간 등을 명확히 밝히지 않은 채 기부를 요구하고 있어 시민들의 '선의'가 엉뚱한 곳에 쓰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기부금품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을 개정, 2월 25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개정 법안은 기부금품 모집을 기존의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전환한 점이 특징. 모금을 원하는 개인이나 단체는 행정자치부나 광역자치단체에 등록을 하면 되도록 했다. 이에 따라 1천만~10억 원 미만의 기부금품을 모집할 경우 대구시, 10억 원 이상은 행자부에 등록을 하면 된다.

하지만 현재까지 대구시에 기부금품 모금을 위해 등록한 단체는 단 한 곳도 없다. 모금활동이 곳곳에서 벌어지는 현실과는 크게 동떨어져 있는 것. 그러나 대구시는 얼마나 많은 단체에서 어떤 목적으로 모금을 벌이고 있는지 실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불법 모금이 확인되더라도 모금 현장을 사진이나 비디오 촬영 등으로 증거를 남겨야 고발이 가능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도 문제.

방성수 경북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처장은 "군소단체들이 우후죽순처럼 모금에 나서면 국민은 성금 요구에 시달리게 되고 기부금이 원치 않는 목적에 쓰일 수도 있다."며 "자치단체가 정기적으로 실태 조사에 나서는 한편 모금목적이나 기간, 단체명 등을 명시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시 관계자는 "1천만 원 미만의 기부금품 모집에 대한 관련 법 규정 자체가 아예 없어 관리가 힘들다."며 "모집단체로 등록을 할 경우 모금 및 집행 내용을 감시하고 과태료 처분을 내리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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