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거짓말

정치인들을 태우고 달리던 버스가 밭으로 굴러 떨어졌다. 밭 갈던 농부는 부상당한 정치인을 죄다 묻어 버렸다. 사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경찰이 생존자는 없느냐고 물었다. 농부는 "몇몇은 아직 죽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모두 묻어버렸다"고 답했다. "그런데 왜 묻었느냐"는 경찰의 물음에 대한 농부의 대답은 "정치인이 하는 말은 모두 거짓말이기 때문"이었다. 정치인의 거짓말과 관련한 프랑스의 유머다.

거짓말에 관한 한 전 세계적으로 일등으로 꼽히는 직업은 정치인이다. 정치인의 거짓말을 희롱하는 유머가 나라마다 지천이다. 정치인을 '강이 없는 곳에 다리를 놓아주겠다고 약속하는 사람들'로 매김한 정치가도 있다. 여론조사 등을 보면 우리 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상당수 사람들이 정치인의 말을 거짓으로 여긴다고 대답한다.

정치인의 말을 거짓이라고 보는 사회의 거듭된 판단에는 그러나 함정이 있다. 정치인은 원래 거짓말쟁이니까 거짓말을 해도 된다고 너그럽게 봐주는 편견이 생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노라는 약속을 사탕발림으로 여기면서도 참인지 거짓인지 시비를 거는 이는 드물다. 거짓말 중에도 어린이에게 착하다고 하거나 여자에게 예쁘다고 하는 식의 좋은 의미의 이른바 하얀 거짓말은 누구나 한다. 그러나 검든 하얗든 거짓말을 언제까지나 믿고 살아 갈 수는 없다는 데 거짓말의 함정이 있다.

거짓말쟁이로 비하되는 유머나 사회의 인식에 억울한 정치인도 적지않을 터다. 아예 거짓말을 하지 않는 정치인도 있을 터고 비록 거짓의 결과가 나왔더라도 애당초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닌 이도 있을 수 있다. 변화한 상황에 원래의 말이 거짓이 됐을 뿐이었다고 변명할 수 있는 이도 많다.

대통령이 내년 총선 뒤 구성되는 국회 초반에 개헌문제를 처리하자는 정치권의 요청에 개헌안 발의를 유보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선거를 앞둔 시점에 터져나온 대통령의 개헌발의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은게 사실이다. 개헌의 정당성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거짓의 구석이 엿보인다는 것이었기에 유보의 소식은 다행스럽다.

그러나 지금은 안 되고 내년에는 가능하다는 주장은 과연 거짓말로 변하지는 않을까.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내년의 상황을 전제로 한 정치권의 합의가 어떻게 다가올지 궁금하다.

서영관 북부본부장 seo123@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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