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협상은 끝나지 않았다

한미 FTA 타결 이후 한국과 미국 언론의 보도 태도는 사뭇 대조적이다. 우선 한국 언론은 흥분했다. FTA 관련 소식이 연일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타결 내용뿐만 아니라 협상과정까지 우리 언론은 경쟁적으로 추적 보도했다. 이 가운데 압권은 협상 이후 벌어진 협상대표들에 대한 무용담 경쟁이다. 협상이 막힐 때마다 이들이 어떤 전략을 사용했고 어떻게 이 난관을 헤쳐 나갔는지는 대단히 흥미로운 기삿거리가 됐다. 급기야는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을 비롯한 김종훈 협상 수석대표, 아래로 실무진에 이르기까지가 한미 협상의 영웅들로 포장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 같은 보도 경쟁을 통해 협상과정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노 하우를 속속들이 알게 된 것은 비단 우리 국민만은 아닐 터이다.

반면 미국 언론은 달랐다. 워싱턴 포스트를 비롯한 LA타임스 등 주요 미국 언론들도 한미 FTA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대부분의 주요 언론들은 AP나 로이터 통신을 인용해 협상 타결 소식과 미국 내 쇠고기 시장 개방 문제 등에 대한 정계·업계의 반응 등을 다루는 데 그쳤다. 이들은 주로 한국 내의 뜨거운 반응과 양국 비준을 둘러싼 일정, 미국 정계의 반응 등을 팩트 위주로 보도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로이터통신을 인용해 한미 FTA 타결 소식을 총평 정도로 짤막하게 보도했다. 3일자 워싱턴 포스트는 "인기 없던(unpopular) 한국의 盧武鉉(노무현) 대통령이 한미 FTA 타결 후 보기 드문 칭찬을 듣고 행복했다."는 한국 측 반응을 실었다. 한국이 엄청난 행복감에 젖어 있다는 뉘앙스를 갖는 기사다. 미국의 어느 언론도 협상대표들이 어떤 협상전략을 구사했고 협상대표들이 왜 영웅(?)인가에 대한 글은 다루지 않았다.

우리 언론이 우리의 협상전략과 협상 대표를 치켜세우고 축제 분위기에 들떠 있었다면 미국 언론은 차분히 한국의 반응을 지켜보며 자국의 이해관계를 국민들에게 전달하는 역할만을 맡은 셈이다.

물론 FTA에 거는 국민들의 관심과 기대는 한국과 미국이 다를 수 있다. 한국의 총수출에서 차지하는 대미 수출 비중이 2006년 기준 13%대에 달하는 반면 미국 수입 시장에서 한국 제품이 점유하는 비율은 2%대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이번 한미 FTA 타결을 통해 한국은 많은 득을 얻었고 미국은 그에 상응하는 것을 잃었는가. 그렇지 않다. 누가 이득을 보고 손해를 볼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 일이다.

이 같은 일련의 과정에서 우리 언론이, 또 협상 대표들이 간과한 것이 있다면 아직 협상이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협상타결은 선언됐지만 협상 자체가 끝난 것은 결코 아니다. 앞으로 이어질 협상 문안 작성이나 국회 비준 과정에서 미국 측의 재협상 등 압력 여지는 언제라도 존재한다. 협상 막판에 미국의회는 이러한 태도를 숨기지 않았다. 이미 웬디 커틀러 미국 측 협상대표는 재협상 가능성을 흘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한미 FTA가 양국의회의 비준을 얻었고 발효됐으며 더 이상 한국이 FTA를 체결할 의사가 없다면 문제는 다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한국은 아직 할 일이 많다. 양국 의회의 비준을 얻어야 하고 반대 세력을 다독여야 한다. 어디 그뿐인가. 한국은 중국 일본 등 아직 많은 나라와의 FTA 협상을 남겨 두고 있다. 우리의 대미 협상전략이 고스란히 공개되어 버린 지금 중국과의 FTA 협상 도중 우리 협상 대표가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면 중국 대표들은 어떤 생각을 가질까. 우리는 남의 손에 든 카드를 읽지 못하면서 자화자찬에 빠져 우리 카드만 남에게 다 보여 준 꼴이 아닌지 반성할 일이다.

결국 한미 FTA에 대한 평가는 역사가 하는 것이다. 미국 협상단과 정계 일각에서는 재협상 논의가 일고 있다는 점도 염려스럽다. 막상 FTA가 발효되더라도 기대했던 성과로 이어질지도 의문이다. 벌써부터 협상의 영웅들이라며 호들갑 떨 일은 절대 아니다.

정창룡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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