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호기심 소년서 글로벌 CEO로…제이브이엠 김준호 대표

자동투약·프린터 장비 개발…국내 최고·세계 2위 기업일궈

1963년, 대구 성광고 야간부 1학년 김준호. 그의 인생은 고달팠다. 2년 전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아버지. 그의 어깨에는 생계가 걸려있었다.

밤에는 학교를 다니고, 낮에는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 약 배달을 했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물러나지 않던 가난. 배달부 김준호는 돈을 벌어야했다. 약국에서 주문을 받은 뒤 약 도매상에서 약을 받아 자전거를 타고 약국으로 날랐다. 170cm에도 못 미치는 깡마른 체구. 준호는 항상 파김치였다.

그러나 그의 정신은 깨어있었다. '이 약국을 내가 잡아보리라. 세계의 약국을 내 손으로 움켜쥐리라."

◆2007년 4월, 김준호

43년 전, 가난에 울며 야간학교를 다녔던 청년. 그러나 2007년 4월의 김준호는 더 이상 가난에 찌들렸던 사람이 아니다. 이제 그는 대구 스타기업의 대표이사이자, 대구경북지역 최고의 기업인들이 속해있다는 대구상공회의소 상공의원이다.

그리고 김준호의 명함에는 제이브이엠이라는 회사 이름이 새겨져있다. 약 배달을 하던 청년의 소망이 고스란히 녹아내린 일터다. 병원약국 및 동네 조제약국 등에서 이용되는 정제·분류·포장 등의 절차를 그의 회사가 만드는 자동화 설비가 책임지고 있다. 이 회사가 만드는 전자동 정제 분류 포장시스템(ATDPS)은 대형병원 중소 병원 또는 조제 약국에서 사용되는 모든 약을 처방전에서 투약 프린트 의료보험 공단 청구비까지 무인으로 자동 처리하는 최첨단 장비다. 세계에서 단 4개사 만이 이를 생산하고 있고 우리나라 종합병원 점유율 93%, 세계시장에서도 일본의 약국 자동화 업체 유야마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다.

대구경북지역에서 유일하게 이달 13일 현재 주가가 액면가 대비 100배가 넘는 기업. 상장 1년도 되지 않아 까다롭기로 소문난 외국인들의 지분 참여율이 34%에 이를 만큼 글로벌 투자자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기업. 골드만삭스, 메릴린치, 제이피모건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글로벌 투자기관의 투자대상이 된 기업. 약국 배달부 김준호가 맨손으로 일궈낸 제이브이엠의 성적표다.

영남권은 물론, 전국의 기업들이 탐냈던 옛 삼성상용차 부지 8천 평에 제이브이엠은 신규 공장을 짓고 있다. 현재 본사가 위치한 대구 성서공단 1차단지내 4천 평에다 연구동 등의 증측 공사가 완공단계지만 또다시 공장을 넓히고 있는 것이다.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밀려오고 있는 주문을 감당하지 못해서다.

"고교 시절 약배달을 하면서 '약을 왜 저렇게 느리게, 손으로 종이에 싸서 포장할까?'라는 고민을 해봤습니다. '자동화 기계가 있다면 약사들이 편할텐데'라는 생각으로 이어졌죠. 이런 과정에서 약국에 자동화 기기를 도입, 국내는 물론, 세계 시장까지 평정해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1976년 대구 비산동, 제가 살던 집에서 그 꿈의 첫발걸음을 내디뎠고, 2007년 오늘, 제 목표의 상당 부분을 일궈냈습니다."

◆오뚝이 김준호

그는 1978년 '협신의료기'라는 상표를 내걸고 첫 약 자동 포장기계를 내자마자 행운을 잡았다. 의료보험제도가 도입된 것. 혼자서 병마와 씨름하던 환자들이 병원으로 몰려들었다. 병원 약국은 손이 모자라 앞다퉈 그에게 기계를 달라며 손을 내밀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약국 자동화장비. 국내에서 김 대표 혼자만이 개척했던 시장. 독점이었다. 엄청나게 많은 돈을 벌었다. 1980년대, 그는 누구도 부럽지 않을 만큼의 부를 일궜다.

그러나 세상은 그리 쉽지 않았다. 1988년, 폐암선고를 받았다. 의사는 포기하라고 했다. 산소호흡기를 댄 적도 많았다. 죽음은 이미 눈앞에 와 있었다.

사업을 접고 강원도 산골로 들어갔다. 그리고 8년동안, 그는 생사를 넘나드는 투병생활을 했다.

"결국 살았습니다. 기적이었죠. 그러나 회사는 만신창이였습니다. 투병기간동안 믿고 회사를 맡겼던 직원들은 저에게서 받은 기술을 바탕으로 자기 회사를 차렸더군요. 배신감에 몸을 떨었습니다. 그러나 증오를 버렸습니다. 그리고 1996년, 다시 일터로 복귀했습니다."

과거 모았던 재산 20억 원을 고스란히 털어냈다. 그리고 연구원들을 모았다. 누구도 따라오지 못하는 하이테크 기술을 갖추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하지만 복귀 이후 3년동안 적자가 이어졌다.

"독점기술, 즉 특허 획득에 사활을 걸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일본의 한 회사와 대법원까지 가는 특허 침허분쟁에 휘말리기도 했습니다. 이제 저희 회사 모든 벽에 특허 인증서가 걸려 있습니다. 150여 건의 특허등록이 이뤄졌고, 120여 건의 특허출원이 진행중입니다. 이런 노력이 밑거름이 돼 자본금 31억 원의 회사가 시가총액 3천172억 원(13일 기준)이라는 놀랄만한 성적을 일궈냈습니다."

그는 매년 4차례 해외 빈민촌을 다닌다.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쓰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

'투병기간중 크리스천이 됐습니다. 그리고 삶의 목표에 대해 눈을 떴습니다.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 8개국에 학교를 지어주는 등 매년 3억 원을 지원합니다. 세계시장을 제패하는 것도 목표지만, 세계 곳곳에 사랑을 전파하는 것도 저의 사명입니다."

최경철기자 koala@msnet.co.kr

♠ 제이브이엠의 주요 특허(미국특허)

*정제자동분배포장장치

*약 자동포장기의 포장지 프린트 장치

*정제자동분배장치의 정제카세트 배열설치대구조

*약제자동포장장치용 정제카세트의 정제식별기와 이의 제어방법

*개별호퍼를 구비한 자동약제 포장장치

*자동정제 슬라이드 분배장치

*약자동분포기의 수동분배용 보조트레이

*약제분포기용 포장지의 동력 배출장치

*약제분포기용 포장지의 세로접합 거리조절장치

*수납서랍식 반자동 정제공급장치

*약제분포기용 포장지의 배출 컨베이어의 입구스펀지 롤링장치

*슬라이더 캐비닛을 구비한 정제카세트 개폐장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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