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지리는 따분하고 골치아픈 과목이었다. 고교 때 일주일에 한 시간이던 지리시간에는 마땅히 배운 게 없었던 것 같고, 그나마 중간·기말고사 때 반짝공부를 한 것이 전부였던 듯하다. '다음 중 세계 곡창지대가 아닌 곳은?'이라든지, 우리나라 지도에 위도별로 선을 그어놓고 '다음 중 특정 농산물이 생산되는 지역을 찾아라'는 식의 문제가 나왔던 것 같다. 50점 아래로 점수를 받은 학생들이 상당수였다. 그 자잘하고 쓰잘데없는 것들을 외워 80~90점을 받는 친구들이 위대해 보이기까지 했다. 당시 최고급 재질의 종이로 만든 사회과부도는 1년 내내 펼 일이 거의 없었다. 책에 밑줄 긋고 외운 기억밖에 남질 않으니 수업시간이 재미있을 리 없었다. 돌이켜보면 그런 식의 수업을 해야 하는 선생님도 참 따분했을 것 같다.
그런데 지리는 알고 보면 아주 재미있는 과목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한 얘기들, 가보지 못한 나라의 신기한 생활양식이나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공부다. '땅이 가족의 황당 지리여행(박정애·엄정훈 글/살림 펴냄)'이라는 책이 신간코너에서 눈에 띄어 펼쳤다. 지리로 인해 따분했던 나의 학창생활과 그 지루했던 지리를 이렇게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는 요즘 아이들을 비교해보니 부러움마저 든다.
'초·중생을 위한 유쾌발랄 지리 교과서'라는 익살스런 부제를 단 이 책은 현직 지리 교사들이 만들었다. 저자들은 '지리는 생활입니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생활양식의 대부분이 자연 환경의 산물이기 때문에 자연 환경을 이해하면 그 지역의 문화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리를 알면 세상이 보입니다.'라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이 책은 요즘 아이들의 구미에 맞게 어드벤처물로 구성돼 있다. 주어진 미션에 따라 세계 곳곳을 탐험하듯 돌아다니는 모습이 지루하기는커녕 잘 짜여진 영화처럼 재미있다. 주인공은 세계 기후를 연구하는 아버지를 둔 땅이 가족. 악당에게 납치된 아버지가 남긴 단서를 좇아 구출하는 것이 이들에게 던져진 미션이다. 땅이 가족은 긴 여정 동안 지구촌의 신기한 생활상을 경험한다. 아프리카 사막에서는 캐러밴을 만나고, 스페인 마드리드에서는 집시를 만나 얘기를 나눈다. 런던 템즈강에서는 안개 때문에 길을 잃기도 하고 페루에서는 고산병으로 고생하기도 한다. 암호처럼 적힌 단서를 풀어가면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바이칼 호수와 우랄산맥을 지나고, 아마존과 캐나다를 거쳐 북극해까지 날아간다. 각 페이지마다 등장하는 상식코너에는 각 나라의 기후와 문화, 지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글이 가득하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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