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뢰가 터질 듯 말 듯한 위태로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외적 상황은 물론, 대내적 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터지고 말 것입니다."
지난해 "올해 우리 경제 지형 곳곳이 지뢰밭"이라고 예견했던 정문건(55) 삼성경제연구소 부사장은 17일 오후 대구를 방문, 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위기론'을 재강조했다.
대구상공회의소·삼성경제연구소가 공동주최하고 삼성화재가 후원하는 '21세기 경제포럼'(18일 대구 제이스호텔 개최) 강사로 초빙돼 대구지역 상공인들에게 우리경제 현안에 대해 강연한 그는 "'또 비관론이냐.'라는 선입관을 버리고, 지금의 상황을 정확히 뚫어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위태 위태 세계경제
그는 먼저 세계경제 얘기부터 들어야 한다고 했다.
"미국부터 시작해볼까요? 미국경제는 미국이 2등국가로 전락할 것이라는 비관론이 나왔던 1980년대 초·중반 상황에 비유될 만큼 곳곳에 암초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1990년대 후반의 IT투자 버블 붕괴 후 이를 만회하기 위해 초저금리 정책이 사용됐고, 금리에 민감한 주택과 자동차 등 내수산업이 날개를 달았습니다. 내수시장은 호조를 가져왔죠. 하지만 그 영향으로 수입이 늘어났고 경상수지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IMF는 경상수지 적자가 GDP의 5%가 되면 위험하다고 하는데 미국은 이미 6.5%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미국이 엄청난 적자에도 불구하고 외환위기를 겪지 않는 것은 달러화가 세계 기축통화라는 점과, 미국에 수출을 많이 하는 한국·일본과 산유국들이 미국의 국채를 사주는 덕분이라고 했다. 이런 이유 덕분으로 '폭발'을 모면해가는 '공포의 균형상태(Balance Of Terror)'가 지금의 상황이라는 것.
"조그만 균열에도 폭발이 발생, 붕괴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미국에서는 최근 서브프라임 모기지사태가 터졌습니다. 미국은 주택가격 폭락에 대한 깊은 우려를 표시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또 어떠합니까? 우리도 경험했듯이 중국이 긴축정책에 대한 한마디를 던지자 전 세계의 주가가 폭락했습니다. 중국발 위기는 언제든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 겨울 안정세를 유지했던 유가가 다시 오름세를 타고 있으며, 당분간 고유가는 계속될 것이라고 정 부사장은 전망했다. 더욱이 10년 주기로 찾아오는 엘니뇨가 올해 그 위력을 미칠 것으로 예측되면서 국제 농산물 가격이 굉장히 불안해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살얼음판 국내경제
"일본 등 우리와 경쟁하는 나라들의 통화가치가 비슷하게 절상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최근 상황은 그렇지 못하죠. 원화는 지난해 무려 15%가 절상됐지만 엔화는 오히려 약세가 지속됐습니다. TV, 휴대전화, 자동차 등 우리 주요 수출품의 65%가 일본과 경쟁하고 있는데 원화만 절상하니 가격경쟁력이 떨어집니다. 결국 우리 기업들의 채산성이 매우 나빠진 상태입니다."
그는 최근 이른바 '버블세븐' 지역이 조정국면에 들어가는 등 주택가격이 내림세를 보이기 시작하면서 주택담보대출에 따른 가계부채가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도 우려했다.
"전국 주택가격이 평균 5% 이상 떨어지면 가계부채 부실문제가 부각됩니다. 한국은행도 이미 이를 간파, 경제충격에 대비하기 위해 벌써 8개월째 금리를 동결하고 있습니다."
정 부사장은 가계부채 문제를 잘 해결한다는 전제조건이 붙는 상황에서 올해 경제성장률 4.3%를 달성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해(5%)에서 0.7%포인트나 떨어진 것이다.
"우리 경제에서 또 다른 경고음은 수출산업과 내수산업이 극단적 양극화를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동안 우리는 경제개발이 시작된 이래 최대의 수출 호황을 기록했습니다. 4년 연속 두자릿수 수출 증가율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이 정도면 성장률이 10%는 됐어야 하지만 결과는 그 절반 정도밖에 이뤄내지 못했습니다. 내수산업이 극단적 침체기를 겪으면서 비롯된 것이죠. 우리 경제를 '구들이 내려앉은 온돌'로 표현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불을 때면 아랫목은 뜨거워 죽고, 윗목은 차가워 얼어죽을 판입니다."
그는 외환위기 이후 IMF 관리체제를 3년 만에 졸업하고도, 우리 경제 여건에 맞지 않는 IMF프로그램을 그 이후까지 적용하면서 우리 경제의 밸런스가 무너졌다고 분석했다.
◆활로는 없나?
그는 정부가 내수여력의 회복에 올 한 해 정책 우선방향을 둬야 한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한미 FTA도 우리 경제의 새로운 활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특히 수출 주도형 산업이 많은 대구·경북은 한미 FTA의 최대 수혜지역이 될 것이라는 것.
"여전히 대구경북 주력산업 가운데 하나인 섬유를 다시 한번 되살릴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 해법은 이제부터 이 지역 경제인들이 행정기관과 힘을 합쳐 찾아봐야겠지만, 고품질 제품을 개발할 능력이 되는 기업들은 대단한 수혜가 예상됩니다."
그는 국가 간 경쟁 외에 이제 권역 간의 다툼이 시작됐다고 했다. 이런 의미에서 대구경북도 주변지역과 잘 연계해 권역별 클러스터를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울산 등 주변 지역과 협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중화학공업이 발달한 울산을 감안, 환경에너지 클러스터를 형성한다든지 변화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다면 대구경북의 미래가 대단히 밝습니다. 게다가 대구는 국제육상대회를 유치, 세계 도시로 향하는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저는 세계육상대회를 직접 관람한 기억이 있는데 그야말로 대단한 행사입니다."
한편 그는 FTA와 관련, 일본·중국 등 가까운 나라와 먼저 FTA를 맺는 것보다는 미국과 EU 등 먼나라부터 먼저 하는 것이 이득이 크다고 했다.
최경철기자 koala@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정문건= 경남 밀양 출신으로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를 졸업하고 미국 밴더빌트 대학교에서 경제학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전공 분야인 거시경제, 계량경제, 국제금융론에 대한 연구뿐만 아니라 다양한 경제 이슈들에 대한 시의 적절한 분석으로 국내에서 명성이 높다. 정확한 수치를 막힘 없이 제시하며 풀어내는 강의 덕분에 많은 경제 관련 포럼 개최자들이 그를 강사로 초빙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특히 경제현안·전망과 관련된 분석에는 정평이 나 있다. 현재 삼성경제연구소 부사장 겸 공공정책실장을 맡고 있으며 주요 연구 결과물로는 '경기예고지표용 Consumer Centiment Index 개발', '최근 시중자금난의 원인과 적정통화 정책방안', 'Macro-economic Model for the Korean Economy' 등이 있다.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