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삼성의 에이스 노릇을 하고 있는 제이미 브라운은 적지 않은 좌절을 겪었다. 미국 미시시피출신인 브라운은 클리블랜드(싱글A)에 입단한 1997년과 그 이듬해엔 최고구속 95마일(152km)을 기록한 우완 정통파 강속구 투수였다. 하지만 무리한 피칭으로 팔꿈치에 이상이 생겨 2001년 팔꿈치 인대 접합수술을 받았다.
대부분의 경우 인대 접합수술 후엔 볼 스피드가 더 빨라지지만 브라운의 경우는 달랐다. 스피드는 140km대 중반에 머물렀지만 대신 제구력을 정교하게 다듬었다. 그는 스리쿼터형으로 폼을 변경, 다양한 각도의 변화구를 구사, 경기운영 능력이 나아졌다.
2003년에 트리플A, 2004년 후반엔 메이저리그에도 올랐던 브라운은 일본의 한신 타이거즈로 옮겼다. 그러나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며 선발등판 일정도 늘어지다 2군으로 쫓겨났다. 투구폼 수정을 제의받고 반신반의하며 따르다 투구감각마저 잃고 말았다.
지인의 소개로 선동열 감독의 추천을 받아 삼성으로 오게 된 브라운은 새로운 환경에서 잘해 보리라고 결심했다. 자신의 투구폼을 건드리지 말고 등판 간격을 지켜줄 것도 주문했다.
그러나 2006시즌이 시작되자 일정한 로테이션으로 적응이 될 만하면 비가 내려 경기가 취소되곤 했다. 경험이 많은 선수에게는 별 문제가 안 되겠지만 브라운에게는 등판 간격이 투구 감각을 위해 중요한 문제가 됐다.
6월이 시작되면서 성적은 3승5패에 머물러 있었고 '레인(rain)맨'이라는 별명이 붙게 됐다. 퇴출 문제도 거론되면서 심각한 상황에 이르자 부끄러움이 많고 소심한 성격인 브라운은 더욱 위축돼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6월17일 SK와의 원정경기에 선발 등판해 부진했던 브라운은 절망적인 심정이 되어 있었다. 옆에서 안타깝게 지켜보던 송창근 차장(통역)이 브라운을 데리고 간 곳은 호텔 앞 노래방. 방 대신에 열린 무대가 있어 브라운이 주저했지만 송 차장은 맘껏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싶었다.
그러나 문제는 브라운이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망설이던 브라운에게 송 차장이 한마디 건넸다.
"겨우 몇 십 명이 모인 곳에서 노래도 못한다면 어떻게 수많은 관중 앞에서 야구를 할 수 있겠니?"
그 말을 듣고 잠시 망설이던 브라운은 무대로 나가 '프라우드 메리(proud mary)'를 불렀다. 브라운은 그날 모두 6곡을 노래했다. 'bed of roses(장미로 덮인 침대)'도 불렀는데 'bed of nails(못으로 덮인 침대)'로 가사를 바꿔 불러 처참한 자기 심정을 나타냈다. 그리고 브라운은 그날 많은 손님들 앞에서 'keep on keeping on(나는 전진해 나간다)'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 이후 달라진 브라운은 마침내 10승을 넘어서면서 믿음을 주는 투수로 변했고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지금도 그의 라커 앞에 붙여있는 'keep on keeping on'을 매일 되새기고 있다.
최종문 대구방송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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