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신 비중 높인다지만 대학들은 딴생각하는데…"

2008학년도 대입 앞둔 고교는 지금…

2002학년도 대학입시부터 교육부가 일관되게 추진해온 대입제도 개편의 핵심은 '줄 무너뜨리기'라고 할 수 있다. 점수에 맞춰 전국의 수험생을 한 줄로 세우는 방식의 입시에서 벗어나 '한 가지만 잘 해도 대학에 갈 수 있다.'며 특기와 적성, 소질과 희망에 따라 여러 줄을 세우자는 취지다. 이런 의미에서 2008학년도 대입제도의 내신과 수능 9등급화는 줄 무너뜨리기의 결정판이다. 전국의 수십만 수험생을 1~9사이의 범위로만 표시, 비슷한 수준의 대학 지원자 사이에는 줄을 아예 없애버리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그러나 교육부의 의도는 고교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데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학생들을 뽑으려는 대학들의 생존권적 움직임을 외면함으로써 현실과 동떨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또 내신과 수능, 대학별고사 등 대학들의 다양한 전형 방법은 한 가지만 잘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일단은 모든 것을 잘 해 놓고 봐야 한다는 부담만 키웠다. 3월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그 부작용과 폐해가 예상보다 심각한 것으로 나타나 학교 관계자들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계륵이 된 내신

2008학년도 대입제도가 처음 발표됐을 때 가장 주목받은 부분은 내신 비중을 전체 대입 전형의 50% 이상으로 확대한다는 것이었다. 학교 공부만 잘 해도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에서 나왔다. 그러자 학교는 전쟁터로 변했다. 현재 고3생들은 1학년이던 재작년의 난리법석을 잊지 못한다. 같은 반 친구를 최대의 경쟁자로 만든 당시 교실 모습이 아직도 떨쳐지지 않고 있다.

한 고3 담당 교사는 "학생들의 불만을 피하기 위해 같은 수업을 적게 들어가는 교사가 오히려 출제의 많은 부분을 맡는다."며 "학년별로 섞어서 시험을 치르고 휴대전화를 사전에 수거하는 등 감독도 수능시험 못지않다."고 말했다.

1학기 중간고사가 임박한 고교들은 현재 시험 출제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과목별 평균 점수를 50~60점대에 맞추고 편차를 잘 조정해야 대학들의 내신 산정 때 다른 고교보다 유리한 점수를 받을 수 있기 때문. 한 고교 교장은 "쉽게 출제하던 경향을 버리지 못해 평균이 70~80점 나왔던 학교는 학생, 학부모가 항의하는 바람에 몇 번씩 난리를 겪었다."며 "시험기간에는 학교의 기능이 사실상 중단된다."고 말했다.

이 같은 고교의 현실과 달리 실제 입시에서 내신 성적은 수시모집 일부를 제외하면 그다지 쓸모가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나고 있다. 대학들이 내신 실질반영비율을 그다지 높이지 않아 전체 전형에서 내신 성적이 차지하는 비중이 10%에도 못 미친다. 더욱이 서울대가 정시모집에서 과목별 내신 1등급과 2등급에 같은 점수를 줘 대부분의 지원자를 같은 조건으로 만드는 등 상당수 대학들이 내신 무력화 장치를 만들고 있다. 교육부의 2008 대입제도는 대학의 의도를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내신 비중 확대라는 틀을 결정함으로써 고교의 현실만 왜곡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감이 잡히지 않는 수능

교육청이 주관하는 모의고사를 3, 4월에 두 번 치른 고3생들은 수능 등급화에 대한 공포가 점차 커지고 있다. 성적표에 백분위와 등급이 나오기 때문에 자신의 위치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고 하지만 원하는 대학에 지원할 만한 성적인지, 수시와 정시 가운데 어느 쪽에 치중해야 유리할지 등 구체적인 입시 전략을 세우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교육청 주관 모의고사에는 재수생이 응시하지 않아 자신의 현재 성적에 막연한 불안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지난달에 재수생들만 치른 사설기관 모의고사는 상위권에서 고3생들과 다소 다른 성적 분포를 보여 고교 관계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한 재수 학원의 경우 응시생 1천500여 명 가운데 전 영역 1등급이 40명 가까이 나온 것.

대구 달서구의 한 고3 담당 교사는 "달서구에서는 한 고교에서 전 영역 1등급이 두세 명만 나와도 좋은 성적이라고 하는데 재수생들의 성적 분포가 크게 다르다니 걱정스럽다."며 "6월에 모든 수험생이 응시하는 평가원 모의고사를 쳐 봐야 판단이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수능 성적 비중이 큰 정시모집에서는 입시기관들의 지원 가능점 찾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어서 엄청난 눈치작전이 벌써부터 예고되고 있다. 오랫동안 진학을 담당해온 교사들조차 "올해는 등급만 나오는데다 대학별로 가중치, 배점 등이 각기 달라 비슷한 수준의 학과에서 우열을 가리기가 대단히 어렵다."며 우려하고 있다.

윤일현 송원학원 진학지도실장은 "수능에서는 두 가지 걱정을 함께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선 등급 경계선에 걸리면 한두 문제 차이로 대학에 지원조차 못하는 일이 빚어질 수 있기 때문에 원하는 대학의 합격선에 맞는 등급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는 것. 또 같은 과목에서 50점을 받든 100점을 받든 상위 4% 이내에 들면 1등급을 받는 건 같기 때문에 특정 영역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것보다 영역별로 고른 점수를 받는 게 훨씬 유리하다는 것이다.

상위권 수험생의 경우 논술과 구술 성적이 대학 당락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평소에 이를 준비하는 부담도 상당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 고교 교사는 "대입 전형이 다양화돼 죽음의 트라이앵글이 없어졌다고들 하지만 어느 것도 확실하지 않은 대다수 보통 학생들 입장에서는 대학 진학이 오히려 더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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