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시장경제가 우리에게 많은 혜택을 준 것은 사실이다. 그 덕분에 우리는 과거보다 물질적인 풍요로움과 편리함을 누리며 살고 있다. 백화점과 시장엔 물건들이 넘쳐나고 무한한 선택권을 가진 소비자는 거리에 구애 없이 물건들을 빠르게 구매할 수 있다. 가히 '소비자 천국'의 시대다. 그 대신 우리가 잃은 것도 많다. 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있는 법이니.
무엇보다 시간이 없다. 어찌된 셈인지 갈수록 더 바쁘고 더 숨이 차다. 가족이나 이웃과 함께 할 시간은 물론 지역사회나 자연을 돌아볼 여유는 아예 없다. '나'와 연결된 모든 관계의 '끈'이 끊어질 듯 간당간당하다. 우리에게 연결된 그 보이지 않은 끈에 우리들의 평안과 행복이 달려 있다면, 아무리 일을 해도 초조하고 불안한 것은 그 끈이 끊어져 버렸기 때문이 아닐지. 잠시라도 쉬거나 한눈을 팔면 낙오할 것 같다. 더 열심히 일에 매달리지만 스트레스와 압박감은 늘어간다.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 걸까?
이 책은 다름 아닌 그것에 대한 물음이다. 즉 '생계를 꾸려 가는 것과 삶을 꾸려 가는 것, 그리고 두 가지를 병행하는 것이 왜 점점 더 어려워져가고 있는가'에 관한 얘기다. 미국 클린턴 행정부시절 노동부 장관으로 재직하던 저자는 '일에 빼앗겨버린 삶을 되찾기 위해서' 어느 날 갑자기 장관자리를 사임했다고 한다.
저자는 말한다. 오늘날 우리들 삶이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각박하고 경쟁적일 수밖에 없는 것은 바로 그것이 '신경제'의 속성이기 때문이라고. 구매자가 더 빠르고, 더 좋고, 더 값싼 상품과 서비스를 누리기 위해서는 판매자나 생산자는 더 필사적으로 일에 매달려야 하는데, 문제는 바로 우리가 그 구매자이면서 동시에 생산자나 판매자라는 사실이다. 더 많이 가지고 더 편리하기를 바라면 바랄수록 더 많은 일을 해야하고 더 치열한 경쟁에 시달려야 한다는 것. 그야말로 동전의 양면이다. 더 가지려는 맹목은 더 많은 것을 잃게 할 것이니 부유할수록 인간은 더 가난해질 것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부와 성공에 대한 개인의 가치관을 다시 한번 점검해보고 삶의 균형과 사회적 균형을 찾아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옳은 말이다. 그렇지만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결코 균형이나 공정 편에 있지 않다. 그것은 신뢰도 약속도 아니다. 그것은 오로지 '이익을 위해서'라는 강력한 엔진만을 갖고 있다. 브레이크도 없이 가속 페달만 있는 그것의 유일한 기능은 '무한질주'일 뿐.
지구온난화가 종말론적 대재앙이 될 것이라는 경고 벨이 급박하게 울리지만, 그것은 '성장'만이 살길이라 가리키며 손짓한다. 어서 따라오라고. 처지거나 탈락하면 기다리는 것은 가난과 파멸뿐이라고. 두려움의 바이러스가 전염병처럼 세상에 퍼진다. 그것에 감염된 '부유한 노예'들이 강박적으로 돈과 일에 매달린다. 투기와 투자가 비명을 지르며 질주한다. 그 괴력에 국가도 자발적으로 길을 틔워 준다. 사회적 약자들이 그것의 먹이가 될 것임을 뻔히 알면서...기어이, 한미 FTA가 체결되었다.
bipasor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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