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 그 목소리

유난히 귓전을 강하게 파고 드는 목소리가 있다. 우울하고 나른한 일상 속에서 톡톡 튀는 비타민처럼 듣는 것만으로도 생기를 가져다 주는 목소리가 있고, 소리를 듣는 것 만으로도 '아, 내가 여기에 있구나'를 새삼 일깨워주는 낯익고 독특한 목소리도 있다.

사람들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목소리. 늘 대화를 하고, 라디오를 듣고, 전화통화를 하지만 우리는 목소리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살아간다. 하지만 소리 없는 세상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더구나 '세상에서 가장 좋은 악기'로 불리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없는 세상은 공허함 그 자체일 것만 같다. 우리는 목소리를 통해 가슴에 떨림을 느끼기 때문이다.

△지금 열차가 도착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기차역에 가면 들려오는 특이한 톤과 어조의 목소리가 있었다. 느리게 말을 하는 것 같으면서도 강하고 독특한 발음법 때문에 귀에 쏙쏙 들어오는 목소리. 그래서 역에 가면 그 목소리를 듣는 것 만으로도 '아, 내가 역에 있구나'를 새삼 느끼게 한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이 역의 방송도 많이 바뀌었다. 요즘은 녹음된 성우의 목소리를 사용하는 경우가 상당수다. 역에서 들려오는 방송의 절반쯤은 녹음된 목소리고, 나머지 절반은 역무원들의 목소리.

동대구역 한켠에는 '방송실'이 따로 있다. 이곳에서 역무원 6명이 주'야간을 3교대로 돌아가며 기차의 도착과 발차를 알려준다. 최미경 역무원은 "요즘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방송을 하는 것이 과제"라며 "표준화 메뉴얼에는 '솔'톤으로 하라는 지시도 있지만 너무 톤을 높이다보면 간지럽고 느끼한다는 지적도 있어 지시에 얽매이기 보다는 평소보다 조금 밝은 음색으로 자연스럽게 방송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대구 사람이라면 하루에도 수십번은 들어야 하는 목소리가 있다. 역명과 내리는 출입문을 안내해주는 녹음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KBS 성우 공채 24기 출신인 이윤정씨. 그녀의 목소리는 각종 방송 프로그램과 군(軍) 방송에서도 쉽게 들을 수 있다고. 귀담아 한번 들어보면 '아! 그 목소리'라고 알아챌수 있을 것이다.

△매 시간 흘러나오는 상큼한 청량제

시시각각 변하는 교통 흐름을 전달해주는 메신저, 교통리포터. 좁은 차 속에 갇혀 축 쳐진 사람들의 기분까지 업시켜주는 청량제 같은 목소리의 소유자들이다.

올해로 만 3년째 방송을 하고 있다는 양은정(26) TNB 교통방송 리포터 역시 상큼한 목소리로 짧은 시간 내에 정확한 교통정보를 전달해준다. 톤을 높여서 빨리 말하며 정보가 귀에 잘 들어오도록 콕콕 찍어주듯 발음하는 것이 교통리포터들의 기본.

실제로는 좁은 부스 안에 하루종일 같여 있다보니 가끔은 가슴이 조여오는 듯한 답답함을 느끼며 사는 리포터들이지만, 방송시간 만큼은 미리 스트레칭도 좀 하고 목소리도 한 톤 높여 가다듬은 뒤 청취자들에게 시원한 대자연 속에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좋은 느낌만을 전달한다. 목소리 만으로 내용을 전달하다보니 아무래도 목 관리에 리포터의 사활이 걸리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양 리포터는 "조금만 목이 따끔거린다 싶으면 무조건 병원으로 달려가고, 술을 마신 다음날은 꼭 목이 잠겨 술을 최대한 자제하는 편"이라고 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