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일제가 고종과 대신들을 위협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과 통치권을 박탈하는 을사늑약을 체결하고 統監政治(통감정치)를 시작했다.
1907년 6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26개국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제2회 만국평화회의가 열린다는 정보를 입수한 고종은 전 의정부참판 이상설, 전 평리원검사 이준, 전 러시아 공사관 참서관 이위종 등 3명을 평화회의에 파견하여 일제의 침략상과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폭로해 국권을 회복하고자 했다. 이에 1907년 4월 20일 특사는 극비리에 서울을 출발해 6월 25일 헤이그에 도착했다. 특사는 평화회의 의장을 만나 을사늑약의 파기를 회의 의제에 상정시킬 것을 요구했으나 일본의 방해와 열국의 방관으로 우리 대표의 참석과 발언이 거부당했다.
그러나 한국 대표들은 평화회의를 계기로 개최된 국제협회에서 한국의 비통한 실정을 호소하는 연설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한국을 위해 호소한다'는 제목의 연설 내용은 세계 각국 언론에 보도되어 주목을 끌었으나 구체적인 성과는 없었다. 이에 이준은 끝내 분을 이기지 못하고 그곳에서 순국하였다. 이 사건으로 일제는 고종을 감금하고 책임을 추궁하여 강제 퇴위시켰다.
▶1889년 독일 정치가 아돌프 히틀러 출생 ▶1981년 제1회 장애인의 날 행사
정보관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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