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버지가 들려주는 옛 이야기)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니

얘야, 날씨가 따뜻하니 비로소 봄 같은 봄이 된 것 같구나.

얼마 전만 해도 흙바람이 불고 기온이 낮아 몸을 웅크려야 했지.

그때 문득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옛 시 한 구절이 떠올랐단다. '봄은 왔는데 봄 같지는 않다.'는 말이지.

옛 중국 한(漢)나라 때의 일이란다. 북쪽의 흉노족이 자꾸만 쳐들어와서 괴롭히자 한나라의 임금이었던 원제(元帝)는 흉노족을 달래기 위해 곡식을 나눠주는 한편 궁녀를 뽑아 흉노족의 우두머리에게 시집을 보내었단다.

흉노족은 추운 북쪽에 살고 있는 데다가 문명이 발달하지 못하여 궁녀들은 시집가지 않으려고 애를 썼대. 그러자 원제는 궁중 화공인 모연수(毛延壽)에게 궁녀들의 초상화를 그려오게 하였어. 그 중에서 가장 못생긴 궁녀를 골라 흉노족에게 보내기 위해서였지.

그러자 궁녀들은 서로 선물을 마련하여 모연수에게 주면서 자신을 아름답게 그려달라고 부탁을 하였단다. 그런데 왕소군(王昭君)이라는 궁녀는 아무런 부탁도 하지 않았어. 집이 가난하여 돈이 없는데다가 북쪽으로 팔려갈 만큼 못생기지는 않았다고 생각한 모양이야.

모연수는 왕소군을 그리면서 일부러 못생기게 그리고 또 없는 점까지 얼굴에 떡 찍어놓았지. 그러자 원제는 가장 못생겨 보이는 왕소군을 골라 흉노족에게 보내도록 하였단다.

이윽고 흉노족의 우두머리가 찾아오자 왕소군을 내어주도록 하였는데 왕소군을 본 원제는 깜짝 놀랐어. 왜냐하면 왕소군은 지금까지 자기가 본 궁녀 중에서 가장 아름다웠기 때문이었지.

흉노족의 우두머리인 호한야(呼韓邪)는 미인을 보자 너무 좋은 나머지 원제에게 몇 번이나 절을 하였단다.

"아니, 이게 어찌된 일이냐? 당장 화공을 불러오너라."

원제는 즉시 왕소군을 일부러 추하게 그린 모연수를 참형(斬刑)에 처하였대. 참형은 목을 베는 무서운 형벌이지. 무슨 일이든지 거짓이 없었다면 목숨까지 잃지는 않았을 텐데…….

왕소군이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정든 고국산천을 떠나는 슬픈 마음을 달래고자 말 위에 앉은 채 비파로 이별곡을 연주하고 있는데, 마침 남쪽으로 날아가던 기러기가 그 청아한 소리를 듣고 왕소군을 바라보느라 그만 날갯짓을 잊어버리는 바람에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어. 그래서 왕소군을 일러 기러기도 떨어뜨린다 하여 '낙안(落雁)'이라고도 부르게 되었지.

왕소군이 떠날 때 중원은 따뜻한 봄이었지만 북쪽 변방은 차가운 바람이 불고 있었어. 그래서 어느 시인이 팔려 가는 왕소군의 처지를 위로하기 위하여 시를 지었대.

호지무화초(胡地無花草) : 오랑캐 땅에는 꽃도 풀도 없으니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

그러나 왕소군은 흉노땅에서 어진 마음으로 그곳 여인들에게 길쌈하는 방법 등을 가르치면서 함께 부지런히 일을 하여 많은 존경을 받았대. 비록 봄이 없는 곳에 억울하게 팔려갔지만 왕소군은 자신의 운명을 봄으로 바꾸었구나.

심후섭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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