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도(刀)를 잡고 세상을 치다…검도 배우는 장애인들

"우린 사회에 동화되기 위해 죽도를 잡았어요."

발달장애 3급인 장부광(19) 군과 이동희(21) 씨는 지난 3월 24일 치러진 검도 승단심사에서 당당히 2단을 땄다. 비장애인들은 열심히 하면 3년이면 딸 수 있다지만 9급에서 2단을 따기까지 8년이 걸렸다. 동희 씨는 올 초 특수학교인 남양학교 전문과정에 입학했고 부광 군은 대학입시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 23일 저녁 대구시 달서구 상인동 대구검도관. 10여 명의 청소년들이 죽도를 잡은 채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사범의 지도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연습에 열중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비장애인들과 다를 바 없었다. 이날 두 아이는 대한검도협회로부터 2단증을 받았다.

"처음에는 죽도를 잡을 생각도 하지 못했어요. 때리면 막을 생각을 못하고 도망치거나 고함지르던 녀석들이 이제 죽도로 내리치면 막고 피하고 같이 공격합니다." 대단한 변화다. 대구검도관 이병진(44·경운대 경호학부교수) 관장은 "혼자서는 (장애아동들에게) 검도를 가르치는 일을 상상도 못했을 것"이라면서 부인 신영미(44·장애아동 놀이·운동치료실 운영) 원장의 도움이 없었다면 시작하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이 관장은 이어 "발달장애·지체장애 아이들에게 검도를 가르치는 일이 어려워 하루에도 수십 번씩 그만두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아이들이 조금씩 좋아지는 모습을 보는 기쁨으로 이 일을 계속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관장과 신 원장이 장애아동들에게 치료와 검도강습을 함께 시작한 것은 10여 년 전. 대구대 캠퍼스커플(83학번)인 두 사람은 각각 체육교육과와 특수교육과를 졸업, 검도관과 장애아동 치료실을 운영해왔다. 어느 정도 검도관 운영에 탄력이 붙자 두 사람은 '장애인 특수교육에는 신체치료가 중요하다.'는 신 원장의 뜻에 따라 아이들에게 검도를 가르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치료실에 오는 장애아동들에게 검도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신 원장은 "검도가 발달장애 아동들의 운동능력과 인지력에 도움이 되는 등 여러 가지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며 "운동을 하지 않는 장애아동들은 어깨가 구부러지는데 죽도를 높이 쳐들고 때리는 검도를 하면서 어깨가 펴졌다."고 말했다. 처음엔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해서 검도교습을 시키다가 지금은 구분 없이 통합교육을 한다. 체육관 바깥에서는 장애인들이 차별을 받지만 체육관 안에서는 장애와 비장애의 구분이 없다. 여기선 오로지 실력 차만 있을 뿐이다.

1시간 이상을 기합을 넣고 때리고 막는 연습을 했다. 사범의 '묵상'구령에 자리에 앉은 아이들도 '묵상'이라고 따라 외치고는 눈을 감는다. 이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사회성이 떨어져 다른 사람과 소통하지 못해, 스스로의 세계에 갇혀 살았던 아이들이 검도를 배우면서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배웠다. 이에 아이들은 방과후 혼자서 치료실을 찾아오고 검도관에 와서 운동을 한다. 다시 죽도를 잡고 힘껏 상대를 향해 내리친다. "검도를 하면서 마음껏 소리치고 가슴 속에 가둬뒀던 것들을 발산시킬 수 있어서 좋아요. 말로 잘 표현하지 못하니까 몸부림치고, 비장애인들이 자기말을 알아듣지 못하니까 자해까지 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신 원장은 발달·지체장애아이들이 검도를 하면서 운동효과뿐 아니라 억눌린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효과도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체육관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함께하는 학생들은 운동을 통해 인지적·신체적·정서적·사회적 측면 즉 사회의 기회제공을 목표로 교육을 받고있다."고 설명했다.

"세상 속으로 당당하게 혼자서 걸어갈 수 있는 아이들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렇다고 이들을 위해 굳이 격려의 박수를 치지 않아도 괜찮아요. 장애인으로만 보지 말고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봐주고 조금만 더 신경써주면 그만입니다."

아이들이 검도만 잘하는 것은 아니다. 아직 고교생인 서장환(도원고 2년) 군은 한자 2급 자격증을 땄다. 박장호(도원고 2년) 군은 2000~2008년까지의 모든 요일과 공휴일을 모조리 외워버릴 정도로 머리가 비상하다.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앞으로 혼자 생활할 정도로 회복되기는 어렵다. 특수학교나 일반고등학교의 특수학급에 다니고 있다. 그러나 고교과정을 마친 후 진학할 수 있는 대학이 부족하다. 이 관장은 검도를 통해 사회성을 넓힌 아이들은 일반대학교에 가서도 충분히 적응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그래서 자신이 재직하고 있는 경운대 측과 협의, 장애인들에게 문턱을 낮춰주기로 했다.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 To. 2단 승단심사에 합격한 이동희, 장부광에게

동희, 부광아.

오늘(3월 24일)은 노는 토요일이구나. 동행등산이 예정돼 있었지만 너희들이 오후 3시에 실시하는 검도 2단 심사가 있는 날이라 실내수업을 마치고 긴장된 마음으로 종일을 기다렸단다.

초단 이상부터는 대구검도협회에 가서 승단심사를 봐야 하고 필기와 본국검법, 호구(보호장비)를 착용하고 대련하는 3단계 과정을 다 거쳐야 하기 때문에 조금은 힘이 들겠구나. 점심을 먹고 도복과 죽도, 호구를 갖고 부광이 어머님과 함께 대구실내체육관으로 달려갔었지.

너희들은 심사장소로 들어가고 먼저 도착한 사범님이 도복을 갈아입기 위해 탈의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그저 묵묵히 아이들을 잘 이끌어주신 여러 사범님과 성인검도반 친구들에게 마음의 감사를 드렸단다. 10년 세월을 한결같이 인내심 하나로 참고서 2단 심사까지 볼 수 있게 여기까지 온 오늘이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승단심사를 하는 과정에서 사범님의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당당히 비장애인들과 겨룰 수 있는 너희 둘의 '세상 속으로의 도전'이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져 눈물이 흐르더구나. 초등학교 3, 4학년 때부터 죽도를 잡고 힘들게 운동해오면서 당당히 여기까지 오지 않았니. 2단 승단도 좋지만 무엇보다 너희들의 인내심과 성실성에 한없는 박수를 보낸다.

동희야, 부광아. 관장님과 사범님, 선생님들께 감사하는 마음 잊지 말고 너희들의 감동스런 과정을 이어받을 '놀이·운동실' 동생들을 위해서라도 더욱 열심히 세상 속으로 뛰어가자꾸나. 오늘 과거급제보다 더 당당하게 승단한 너희들이 정말 자랑스럽고 대견스럽구나.

From. 신영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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