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건표의 스타토크] 개그맨 윤택

개그맨 '윤택'하면 그 만의 특유한 머리스타일을 떠올리게 된다. 180cm가 넘는 키에 건강함이 돋보이는 인물.

그를 만나서 제일 먼저 왜 개그맨이 됐는지 물었다.

"늦게 희극배우가 된 거죠." 그가 입을 뗀다. 윤택은 개그맨이라는 단어보다는 희극배우라는 말이 더 정겹다며 '희극배우'라는 단어를 고집했다. 그는 희극배우로 데뷔하기 전까지는 인터넷 리서치 솔루션을 개발하는 벤처기업 대표였다고 했다. "직원도 30명이 넘었어요. 사업실적도 좋고 개발하려는 프로그램 반응도 좋았는데…. 사업자금의 한계 때문에 문을 닫게 됐죠." 문을 닫을 무렵이 그가 살아온 세월 중에 가장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는 그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인생을 되돌아보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고 의연하게 말했다.

"그 때, 부모님이 참 많이 우셨어요. 돈은 바닥이 나고 사업자금으로 끌어다 쓴 대출금 상환날짜는 자꾸 돌아오고…. 이대로 버티다가는 죽을 수도 있겠다 싶을 만큼 참담한 순간이었죠. 순간, 어릴 적부터 꿈꿔오던 희극배우나 되고 죽자 생각하니까 다시 기운이 들었어요. 그 때부터 인생이 바뀐겁니다."

그는 마음속 쓰라림을 희망이라는 단어로 채워넣고 나니, 다시 세상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가 데뷔한 것은 2003년도. SBS 코미디언 공채 7기로 합격하면서 새로운 인생을 맞이했다.

꿈은 현실로 다가 왔지만 남들이 알아주는 코미디언으로서 꿈을 지켜 나가는 게 더 힘들었다고 했다. "제가 어릴 적부터 임하룡, 이주일 선생님을 보면서 코미디언의 꿈을 키웠었거든요. 코미디언이 됐다고 좋아했는데 아무도 몰라주니까 속상한거예요. '봐라, 꼭 코미디언으로서 성공하고 말테다' 이렇게 마음속으로 생각하고는 정말 이를 악물고 밤낮없이 연습했었죠."

그는 생활속에서 늘 새로운 웃음을 만들어내는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외국과 달리 코미디의 변화와 흐름이 빠르기 때문에 매번 새롭고 신선한 캐릭터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돼요. 그러니까 평상시에도 늘 주변을 면밀히 관찰하고 코미디 소재로 연결하는 버릇이 생겼어요. 그러다보니 동료들과의 대화조차도 마치 콩트 한 편 같다니까요."

말을 마치고는 그는 가족 뮤지컬 '짱구는 못말려' 연습실로 안내했다. 도착하자마자 연습복으로 갈아입고서는 동료배우들과 뒤섞여 쉴 새 없이 노래하고, 춤추고, 연기 연습에 몰입한다. 웃음기가 가득 묻어 있는 그의 표정이 한없이 행복해보여 처음 보는 순간부터 희극배우라고 불러달라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참 연습에 몰두한 뒤 잠시 물 한잔을 마시러 나와서는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코미디 학교를 설립하고 싶다."는 앞으로의 포부를 이야기했다. "철저하게 코미디언의 재능 있는 학생들만 선발해서 학비부터 코미디언이 되는 모든 소요비용을 학교에서 뒷받침해주는 그런 학교를 만들고 싶어요." 그가 세상에 내놓고 싶은 코미디 학교는 보다 구체적이었다. "코미디언으로의 재능은 있지만 현실 때문에 못하는 친구들도 많아요. 그런 학생들이 원 없이 꿈을 만들어가는 코미디 학교. 코미디언으로서 누군가 후배들을 위해서 해야 될 일 아닌가요." 윤택. 그는 천상 코미디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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