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우리들의 서민 '들풀과 들꽃'

▲ 김정호(수필가)
▲ 김정호(수필가)

어느새 여름으로 가는 길목이다. 들녘에는 들풀들이 곳곳에서 제 모습을 일으켜 세워 바람에 나부낀다. 키가 작은 들풀이라 힘이 없어 늘 짓밟히는 우리들의 민초, 그러기에 들풀은 아예 몸을 낮추어 태어난다. 비바람에 꺾이지 않기 위해 몸을 낮추어 태어난 들풀들의 슬픈 지혜를 누가 모르랴.

작아서 더욱 아름다운 들풀, 그 들풀이 그려놓은 색색의 들꽃. 언제나 몸을 낮춘 겸손의 들풀은 비가 오면 온몸으로 비를 맞고, 바람 불면 부는 대로 흔들리며 살지만, 결코 꺾어지지 않는다. 짓밟히고 시달려도 햇볕을 맞아 다시 일어서는 들풀들.

5월이면 외진 산기슭과 벌판을 가보자. 척박한 땅에서 혼자의 힘으로 갖가지 생명을 그려놓은 한 폭의 수채화를 발견하게 되리라. 풋풋하고 싱그러운 들풀의 향기, 작으면 작은 대로 홀로서도 아늑한 들풀의 소박한 평화. 우리 모두가 그토록 찾아 헤매이던 평범한 삶의 아름다운 위안이 그들의 소박한 모습에 있음을 알리라.

오늘도 슬프도록 그리운 고향의 들풀들. 먼 등하굣길 혼자 오가며 눈에 익혔던 고향의 들풀과 들꽃에는 유년의 무한한 추억과 꿈을 담고 있다. 그러나 오늘의 꽃은 추억의 향기와 유년의 꿈만으로 존재할 수 없다. 이제 꽃도 돈이 되어야 하고, 가꾼 대가를 몇 겹으로 인간에게 되돌려 주어야 생존이 유지될 수 있다.

육지가 바다보다 낮고 일조량이 유달리 적은 네덜란드의 꽃은 오직 기술로서만 피어난다. 소규모 농가에서조차 컴퓨터로 쏟아내는 꽃들은 유리온실 속의 조명으로 밤과 낮의 구별 없이 피어난다고 한다. 꽃마저 이제 산업화로 변신한 세상인 만큼 들풀과 들꽃의 존재를 헤아리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인지도 모른다. 온실 속에서 자란 화사하고 화려한 꽃들의 부풀려진 의미와는 달리 들풀과 들꽃은 큰 의미마저 부여받지 못했다.

모든 것을 생산성과 소득으로 판가름하는 세상일지라도 한번쯤은 들풀을 주목할 필요도 있으리라. 외진 곳에서 힘차게 발을 벌려 자라나는 삶이 믿음직스럽고, 목말라도 참고 견디며, 뜨거운 햇볕에도 견디어 이겨내고, 사나운 바람에도 인내하는 우리들의 서민. 땅에 발을 붙인 몇 가닥의 실뿌리이건만 거기 믿음과 안식과 안주가 있는 들풀과 들꽃.

5월이 열리고, 이 해의 신록이 5월 춘풍에 벌판을 휘달리는 요즘이다. 억지로 집에 불러들인 들꽃은 자연보호 측면에서나 보는 이에게나 별 의미가 없다. 직접 들판에 나아가 들풀과 들꽃을 가슴으로 만나보자. 이 탈 많은 세상에서도 인내하는 지혜가 거기 있으리니….

김정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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